[청사초롱-배금자] 담배회사에 책임을 묻는 이유
입력 2011-07-18 19:43
“안전담배 제조기술 있으면서 외면하는 것은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처사다”
지난 6월 수원지법에서는 담배 화재로 아파트와 점포를 불태운 당사자 2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담배에 침을 뱉어 재떨이에 비벼서 불이 꺼진 것을 확인하고 꽁초를 버렸는데도 담뱃불이 재발해 화재가 일어났다고 증언했다. 재판의 주요 증언을 요약하자면 담배회사가 담배 속에 다량의 연소촉진제를 첨가해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끝까지 타들어가도록 설계한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또 담배회사가 국내용은 화재위험이 높은 일반 담배만을 제조 판매하지만, 수출용은 화재안전담배를 제조해 판매한다는 사실도 몰랐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국내에 화재안전 담배가 출시된다면 이들도 당연히 이런 종류의 담배를 선택할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경기도가 담배제조회사를 상대로 낸 이 사건은 담배 화재에 대한 책임을 흡연자가 아닌 담배회사에 묻는 소송이다. 화재안전담배는 흡연자가 일정한 시간 흡연하지 않으면 저절로 담배가 완전히 꺼지게 설계돼 있는 담배다. 흡연자가 부주의로 꽁초를 떨어뜨린 경우에도 담뱃불이 저절로 꺼지므로 화재를 예방하는 획기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국내에 판매되는 일반담배는 흡연자가 끽연활동을 중단했는데도 담배 스스로 끝까지 타들어가도록 설계돼 있다. 따라서 타는 부위를 제거하여 꺼진 것처럼 보여도 안에서는 여전히 불씨가 남아 있다가 주변 가연물질에 접촉되면 화재가 발생할 위험이 아주 높은 담배이다.
안전담배를 생산할 수 있는 실력이 있는데도 담배제조 회사가 이를 외면해 흡연으로 인한 말할 수 없는 화재피해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2004년 뉴욕주를 시작으로 미국의 모든 주와 캐나다, 호주 전역에서 화재안전담배만을 제조 판매하도록 하는 법률이 제정됐다. 또 유럽연합(EU)의 모든 국가도 2011년부터 화재안전담배법을 도입하기로 결의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담배회사가 화재안전담배의 제조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화재안전담배는 일반담배와 맛이나 독성, 가격 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1997년 미국 CBS 방송의 인기프로 ‘60분’에서는 필립모리스의 ‘햄릿 프로젝트’를 폭로했다. 그것은 담뱃불을 계속 타들어가게 할 것인지, 타들어가지 않게 할 것인지를 담배회사가 자유자재로 선택이 가능한 수준임을 시청자에게 알린 것이었다.
이후 2003년 필립모리스의 일반담배를 피운 흡연자가 버린 꽁초에서 재발화된 화재로 자동차 안에 있던 어린이가 크게 화상을 입은 사건에서, 피해자 부모는 필립모리스를 상대로 화재안전담배 제조기술이 있으면서 화재위험이 높은 일반담배를 판매한 것에 책임을 추궁했고 필립모리스는 200만 달러의 배상에 합의했다. 또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도 담배 화재로 청소년 3명이 사망했고 유가족들은 담배회사에 법적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2005년에 발효된 세계보건기구의 담배규제협약에서는 담배회사에 대한 민·형사책임을 추궁하는 법률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담배회사에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이제 시대적 추세가 되었다.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활발하다.
경기도가 담배회사를 상대로 담배 화재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이 사건의 재판부는 담배 회사에 ‘미국 등에 판매하는 화재안전담배를 국내에도 출시하라’는 화해권고안을 냈지만 담배회사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가장 좋겠지만 수십년 동안 담배에 익숙한 소비자를 마냥 비난할 수만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화재안전담배는 여러모로 유용하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모든 다국적 담배회사들은 화재안전담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자국에서는 화재안전담배만 팔고 우리나라에서는 화재위험이 높은 일반담배만을 판매하고 있다. 담배회사의 책임을 묻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배금자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