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동재] 48대 1

입력 2011-07-18 19:44


대한민국의 공무원 100만명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10일 발표된 유엔의 공식 보고서인 ‘세계인구 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총 인구는 4818만명 수준이다. 국민과 공무원의 비율은 48대 1쯤 되는 셈이다.

유엔은 현재와 같은 인구 감소 추세가 계속될 경우 2100년의 대한민국 국민은 3722만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공무원 정원이 더 늘지 않고 현재처럼 유지된다 하더라도 민간인과의 비율은 37대 1로 줄어든다.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같은 시기에 우리의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솟을 것이란 전망도 함께 나왔다. 이 같은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관민 비율은 더욱 낮아질 게 분명하다. 이는 앞으로 20세 이상, 64세 이하 이른바 생산가능인구가 양쪽 어깨에 짊어져야 할 부담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대 정부는 정부 기구 축소와 통폐합, 공무원 인원 감축 등을 통한 작은 정부 구현을 추진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내는 모습만 되풀이해 왔다. 행정기구의 합리·간소화로 능률을 높이고 행정 효과를 극대화해 낭비 없는 정치 운영을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이 사안은 지구촌 전체의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한 국가에 얼마나 많은 공무원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일까.

2000년 3월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이었던 런위링(任玉嶺) 국무원 참사(차관급)가 촉발시켰던 ‘관민비(官民比·공무원과 민간인 비율) 논쟁’은 상징적인 사례에 속한다. 그는 당시 인구 13억명이었던 중국의 공무원이 4572만명에 달한다며 대폭 감축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1대 26이라는 현재 비율은 서한(西漢) 시대의 306배, 청말(淸末)의 35배”라고 부연 설명했다. 논쟁이 뜨거워지자 국무원은 “정부와 관련된 기업 단위와 사업 단위 종사자를 공무원에 포함시키지 않을 경우 1대 198 수준”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양측의 공방이 이어졌지만 이 사안에 대한 명백한 시시비비는 가려지지 않았다. 다만 “공무원들의 대민 서비스 질이 높아지지 않는다면 인민들의 불만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으로 남았을 뿐이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경영연구가였던 시릴 N 파킨슨은 1955년 관료주의의 속성을 꿰뚫어보는 이론을 발표했다. 공무원 수는 업무량의 유무나 과다와는 관계없이 증가한다는 그 유명한 파킨슨의 법칙(Parkinson’s Law)이 그것이다. 그는 1914년부터 1928년까지 15년 동안 영국 해군의 함정은 64%, 장병은 31%나 감소했지만 해군본부의 관리자는 오히려 78%나 늘어난 사실을 증거로 들이댔다.

정치와 관료사회의 결탁을 불러 온 엽관제(獵官制·spoils system)의 폐해에 대한 지적은 1800년대 중반부터 이미 시작됐다. 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주요 관직을 독차지하는 이 제도는 급기야 공공연한 매관매직과 정치 부패를 불러왔다. 1880년 공화당의 제임스 A 가필드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인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선거가 치러지기도 전에 이미 정파 간 암묵적 거래로 인해 대부분의 자리가 내정됐기 때문이다.

현재의 기류대로라면 작은 정부를 추구하려는 움직임은 발붙일 곳이 없을 것 같다. 최근 정부와 한나라당은 복지 및 소방공무원을 수천명 늘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사회복지를 확대하고 경기를 자극하겠다는 취지의 ‘큰 정부’ 정책은 일단 매력적으로 보인다. 좌·우와 보수·진보를 불문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망국적인 행태를 방치한다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은 호소력을 상실한 상태다.

내년에는 총선과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이를 틈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각종 명분으로 포장하는 포퓰리즘이 제 세상 만난 듯 극성을 부릴 것이 뻔해 보인다. 그런 와중에 자연스레 ‘공무원 끌어안기 공약’도 나올 터이고….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이동재 선임기자 dj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