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병영문화 제대로 개선하려면

입력 2011-07-18 19:06


구타, 폭언, 가혹행위, 왕따, 안전사고, 기강해이, 기밀누설, 금품상납, 인사청탁, 뇌물수수…. 군대에서 고쳐야 할 사안을 나열하라면 숨이 찰 정도다. 이 중에서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라면 단연 구타, 폭언, 가혹행위를 척결해야 할 사안으로 꼽을 것이다.

문제는 졸병을 상대로 한 고참들의 구타, 폭언, 가혹행위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1970년대에 군대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집단 매타작에 이골이 났을 것이다. 대걸레자루나 야전삽으로 후임병들의 엉덩이를 때렸고, 주먹으로 배를 가격하면서 군홧발로 정강이뼈를 걷어차기 일쑤였다. 샌드백이 따로 없었다. 맞을 때 인상을 쓰면 더 맞았다. 하루라도 맞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50대 후반 선배들의 이야기다.

예비역들의 말을 들어 보면 대체로 80년대 중반 이후 매타작의 강도가 약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고약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자는 비교적 군기가 세지 않은 부대에 근무했지만 저녁 식사 후에는 일과처럼 집단 얼차려를 받았다. 병장들이 “애들 군기가 빠졌다”고 질책하면 상병들이 일·이병들을 집합시켜 가혹행위에 가까운 얼차려를 시켰다. 관물대에 발을 올려놓고 침상 위의 철모에 깍지 끼고 엎드려뻗쳐를 시키거나 한여름에 방독면을 쓰고 연병장을 돌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수송부대 고참들은 수송·정비병이 전입해 오면 눈을 가리고 기름을 먹였다. “기름은 기생충 퇴치에 특효약이야.” 고참들이 기름 시식회를 강요할 때 하던 말이다. 기름 이름을 맞히지 못하면 으레 구타가 잇따랐다. 전방에서는 삶은 계란의 하얀 속껍질을 잘라 고막이 찢어진 사병의 귓속을 막아 놓고 방치하기도 했다. 귓속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한다는 이유였다.

요즘은 겉으로 표시가 날 정도로 때리지는 않는 모양이다. 대걸레자루, 각목, 야전삽을 동원하지 않고 지능적으로 때린다. 꿀밤을 때릴 때처럼 주먹을 쥐고 명치나 늑골 사이를 가격하는 식이다. 이때 갖은 폭언을 써가며 정신적 고통을 가한다. 후임자들의 돈을 강탈하는 양아치 같은 고참도 있다. 월급이 입금된 졸병의 카드를 강제로 빌려 쓰고 그냥 제대한다. 휴가 나오면 받으러 오라는데 누가 그를 찾아가겠는가.

기자의 장남이 근무하던 대대에서 사병 2명이 잇따라 숨졌다. 제대하려면 1년가량 남았는데 그 1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진 적이 없다. 무사히 제대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사병 사망 뉴스를 접하면 발생 장소를 먼저 챙겨보고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 심정이 모두 이와 같으리라.

신세대 장교 의견 수렴하고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 등을 계기로 드러난 잘못된 병영문화는 개선돼야 마땅하다. 군 당국은 신세대 장병들의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를 고려한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타성에 젖은 군인에게서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 각계 의견을 수렴하되 신세대 장교들의 의견을 널리 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신문고 같은 제도를 활성화시키고, 문제를 제기한 사병을 보호하는 방안도 내놓아야 한다.

초급 간부가 제 역할 다해야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대책들이 나왔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은 운영에 문제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대장 이상의 지휘관들이 일선 사병들의 애로사항을 정확히 파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하들 눈빛만 봐도 사정을 알 수 있는 부사관, 소대장, 중대장들이 움직여야 한다. 분대, 소대, 중대에서 벌어지는 일을 초급 간부들이 모른다면 지휘 능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전문상담사를 늘려야 하고, 빠른 시일 안에 전문상담사 증원이 어렵다면 중대장 이하 간부들을 상대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심신이 약해서’라는 이유로 모든 원인을 사병들에게 돌려선 안 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