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한류, 할리우드까지?

입력 2011-07-18 19:42

안정효 작가의 1992년작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1950∼60년대 영화광들에게는 보물창고 같은 소설이다. 수백편의 당시 할리우드 영화가 줄줄이 등장한다. 작품에 나오는 할리우드 키드들, 곧 ‘황야의 7인’이라고 스스로 이름붙인 주인공들과 흡사하게 영화 마니아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소설에 거론된 영화 중 몇 개나 봤는지 세 가며 서로 더 많이 봤다고 다투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이 소설을 읽으며 향수에 젖는 40대 중반 이후의 세대에게 영화는 곧 할리우드였다. 유럽영화가 어쩌다 소개되기도 했지만 가뭄에 콩 나는 정도였고, 한국영화는 대부분 ‘방화(邦畵)’라는 비칭으로 불리며 영화 대접조차 받지 못했다. 물질적·문화적으로 궁핍했던 시절 할리우드는 현실의 도피처이자 꿈과 풍요의 상징이었다.

더 나아가 다소 과장하면 할리우드는 ‘성소(聖所)’로까지 여겨졌다. 실제로 신문들은 할리우드를 ‘성림(聖林)’이라고 썼다. 물론 할리우드(Hollywood)를 홀리우드(Holywood)로 오인한 탓이었다. 하지만 할리우드를 영화의 성지로 보는 시각이 무의식중에 표출됐던 것은 아닐까.

그처럼 한국영화가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던 할리우드에 한국영화와 영화인이 본격 진출한다. 김지운 감독이 메이저 영화사 라이언스 게이트가 제작하는 할리우드 입성작을 연출하면서 아널드 슈워제네거를 주연으로 기용하는가 하면(엔터테인먼트 위클리),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가 유명 흑인감독 스파이크 리에 의해 리메이크된다(LA타임스)고 한다. 이른바 한류가 할리우드에까지 부는 모양새다.

사실 한국 영화감독들의 진출이나 한국영화의 리메이크는 할리우드에서 새롭지 않다. 1970년대 무술 액션물로 유명했던 이두용 감독이 일찍이 88년 처음으로 할리우드에 스카우트돼 ‘침묵의 암살자’라는 영화를 찍었다. 또 ‘거울 속으로’ ‘장화 홍련’ 등이 이미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됐다. 그러나 슈워제네거 같은 거물이 출연하거나 스파이크 리 같은 유명 감독이 연출한 적은 없었다.

다만 일부에서는 한국영화(인)의 할리우드 본격 상륙이 반드시 반길 일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소재 고갈에 빠진 할리우드가 세계 각국의 영화와 영화인을 블랙홀처럼 집어삼키면서 하청업체(자)로 전락시켰듯 그 같은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다. 그러나 중국의 존 우(吳宇森)나 대만의 앙리(李安)는 할리우드를 통해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한국도 그런 감독을 가질 수 있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