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여자축구 ‘기적’ 시름의 국민 ‘기운’… FIFA 여자월드컵 아시아 첫 우승

입력 2011-07-18 18:34


일본 여자축구 대표팀 주장 사와 호마레(33)는 2011년 FIFA(국제축구연맹) 여자월드컵에 출전하기 전에 지난 3월 일본 동북부 지역을 강타한 지진해일 동영상을 다시 봤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일본) 국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 대회 골든볼(MVP)과 골든부트(득점왕)를 차지한 그의 이런 희망은 기적처럼 현실화됐다.

‘나데시코(패랭이꽃) 재팬’으로 불리는 일본 여자축구 대표팀이 FIFA 여자 랭킹 1위 미국을 누르고 아시아 국가 최초로 2011년 FIFA 여자월드컵 정상에 올랐다. ‘나데시코 재팬’의 승전보에 지난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고통에 빠져 있는 일본 국민들은 오랜만에 웃음꽃을 피웠다.

일본은 18일(한국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코메르츠방크 아레나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결승전에서 연장전을 포함해 120분간 이어진 접전에서 2대 2로 승부를 내지 못하고 승부차기에서 3대 1로 승리했다. 일본은 1991년 초대 대회부터 매번 여자 월드컵 본선에 올랐지만 1995년 2회 대회 때 8강 진출 이후 한 차례도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은 6회째인 이번 대회에서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일본이 우승하기 전까지는 중국이 1999년 대회에서 준우승한 것이 아시아 국가가 여자 월드컵에서 기록한 최고 성적이다. 일본은 또 남녀를 통틀어 FIFA가 주관하는 성인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첫 아시아 국가라는 영예도 함께 안았다.

‘나데시코 재팬’의 승전보에 일본 열도는 이날 감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일본 언론은 이번 승리를 일제히 머리기사로 실은 뒤 국민들에게 “포기하지 말자”라는 메시지를 전해준 경기였다고 찬사를 보냈다.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은 아예 호외까지 발행했다. 일본 국민들은 대표팀이 이번 경기 전까지 미국과 25번(3무22패) 싸워 한 번도 이긴 적 없었던 데다 경기 내내 끌려가다 동점을 이룬 뒤 승부차기 끝에 우승한 것에 대해 “선수들의 강한 정신력에 큰 자극을 받았다. 대지진과 원전 사고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해외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은 “FIFA에 36년간 재직하면서 일본의 결승 진출만큼 놀란 적이 없었다. 매우 감동적인 결승전이었다”며 일본의 우승을 축하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역시 “월드 챔피언 일본에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미국 언론들 역시 자국에 패배를 안긴 일본 대표팀을 오히려 ‘대지진 속에서 희망의 불씨를 살려낸 영웅들’이라고 추켜세웠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