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 없는 것을 연주하면 공해… 우리나라 음악가들 정신차려야”

입력 2011-07-18 22:12


KBS 2TV 밴드 오디션 ‘톱밴드’ 심사위원장 송홍섭

송홍섭(57)의 발자국은 우리나라 대중음악사다. 그는 1978년 그룹 ‘사랑과 평화’로 데뷔한 뒤 가요계 최전방에서 활약해 왔다. 80년대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리더로 5∼9집까지, 조용필의 최전성기를 함께 보냈다. 그리고 그의 이름 앞엔 이런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 ‘한국 최고의 베이시스트’.

연주자가 아닌 다른 방면에서의 음악 활동도 대단했다. 전인권 김현식 한영애 등 실력파 가수들의 음반을 프로듀싱했다. 임재범 박정현 등의 콘서트 음악감독도 맡았다. 90년대엔 제작자로 ‘유앤미블루’ ‘삐삐밴드’ 같은 실험적 음반을 선보였다. 저작권이 등록된 그의 노래는 1000곡이 넘는다.

하지만 가수가 아닌 뮤지션의 삶이 대부분 그러하듯 그 역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에선 얼마간 비껴서 살았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최근 TV에 자주 얼굴을 비치고 있다. KBS 2TV 밴드 오디션 ‘톱밴드’ 심사위원장을 맡아 될성부른 뮤지션 찾기에 나선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송홍섭은 함께 심사를 맡은 후배들이 높은 점수를 준 팀에도 혼자만 낮은 점수를 매기곤 한다. 오죽했으면 ‘점수가 짜다’는 의미에서 ‘솔트(Salt) 홍섭’이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최근엔 “‘나는 가수다’(‘나가수’) 출연 가수 중 몇몇은 정말 노래 못 한다” “아이돌은 연출된 개성이다”라는 발언으로 화제가 됐다.

지난 13일 송홍섭을 만났다. “(연습 때문에) 한 시간 이상 시간을 내드리기가 힘들다”고 했지만 막상 대화가 시작되자 오후 1시30분쯤 시작된 인터뷰는 3시30분이 넘어서야 끝났다.

# “밴드는 중독…거짓이 없어야 한다”

송홍섭을 만난 곳은 서울 혜화동 한 연습실에서였다. 15일부터 예정된 ‘한영애 콘서트’에서 그는 음악감독을 맡았다. 연습실엔 앳된 외모의 젊은 연주자들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공연 관계자는 “송홍섭 선생님은 능숙하진 못하더라도 순수하고 젊은 연주자들과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톱밴드’ 출연 제의를 승낙한 이유가 뭔가.

“밴드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이런 프로그램이 잘 되면 (음악시장) 분위기가 반전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밴드음악을 살리자는 제안을 받자마자 ‘오케이’했다. 잘 되면 밴드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늘어날 거다. 밴드는 중독성이 있다. 소리가 모아지는 데서 오는 쾌감이 있다. 함께 모여 음악을 하면 서로 간에 드라마틱한 관계가 생긴다. 가족이나 연인 관계에 버금간다.”

-참가자에 대한 점수가 유독 짜다.

“음악에 순수하게 반응해야 한다. 개성을 연출하거나 누굴 따라하는 건 가치가 없다. 오랫동안 자기 안에 쌓여야 제대로 된 음악이 나온다. 이런 소리는 10년 이상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야 낼 수 있다. 내가 100점 만점에 50점, 60점 밖에 안 주는 건 아직 음악가가 되려면 그만큼 채워야 할 게 많다는 뜻이다. 참가자들 보면 이제 막 음악을 시작한 사람들이니 폼도 잡고 뭔가 과시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것 중에 쓸데없는 게 너무 많다. 난 연주를 하면 가장 중점을 두는 게 ‘단순화’다. 필요 없는 소리는 연주 안 한다. 필요 없는 걸 연주하면 공해가 된다.”

-‘음악에 순수하게 반응하는’ 국내 뮤지션으로는 누구를 들 수 있나.

“‘산울림’이다. 정직하고 용감한 밴드였다. 산울림 연주력을 두고 말들이 많지만 그 팀은 그런 게 무색할 정도로 솔직한 음악을 했다. 장기하와 얼굴들도 마찬가지다. 아마추어 밴드 심사하는 데 너무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다는 지적을 받는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난 ‘톱밴드’에 나온 사람들 중 몇몇은 언젠가는 음악가가 될 것인 만큼 평소 내가 가진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것이다.”

# “우리나라 음악가들 창피한 줄 알아야”

강원도 춘천에서 자란 송홍섭은 초등학생 시절 AFKN에서 우연히 들은 팝송에 빠져 음악의 길을 걷게 됐다. 음악을 하기 위해 열여섯 살에 가출했고, 인천 부두 앞 한 클럽에서 밴드의 일원으로 연주를 시작하며 뮤지션으로서의 걸음마를 뗐다. 이후 그는 연주자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로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뒤엔 막노동판을 기웃거려야 했다. 2002년엔 심근경색, 2004년엔 급성췌장염으로 사선(死線)을 넘나들었다.

-별명이 ‘불사조’라고 들었다.

“내가 일하는 스타일이 ‘안 먹고 안 자고 끝날 때까지 한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매번 일이 끝나면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 실려 간다. 음악가는 하루 종일 자신이 고민하는 음악적 이슈에 골몰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고(故) 김현식이다. 김현식은 아침에 눈 뜨고 밤에 눈 감을 때까지 음악만 생각했다. 다른 건 신경도 안 쓴다. 난 그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하다. 나 역시 집에 일찍 들어가서 가족이랑 과일도 깎아먹고 얘기도 하고 싶은데 그렇게 안 산다. 음악가는 그런 희생이 있어야 한다.”

-‘나가수’ 출연가수 중에서 노래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해 논란이 됐는데.

“내가 말한 핵심은 그게 아니었다. 음악가라면 긴장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뮤지션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방송사에서 강제로 긴장감을 만드니까 그제야 가수들이 진짜 노래를 부른다는 것, 그래서 이런 경종을 울려준 ‘나가수’가 고맙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돌려 말하면 우리나라 뮤지션들 정말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친 뒤 ‘아웃풋’을 내놨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들을 거리’가 없었으면, 시청자들이 편곡 하나 바꾼 걸로 이렇게 놀라워하겠는가.”

30년 넘게 가요계 한복판에서 활동했지만 ‘송홍섭’이란 이름을 내건 음반은 3장 밖에 없다. 환갑을 바라보는 그의 활동 계획은 연주자나 밴드 활동이 아닌, 자신의 이름만을 내건 음악에 전념하는 것이다.

“그동안은 내 음악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요. 올해 안에 4집도 낼 거예요. 앞으로 나만의 음악, 나만의 연주를 보여주고 그런 ‘기록’을 남기는 데 신경을 쓸 겁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