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라운지-김명호] 美·中 ‘달라이 라마 정치게임’
입력 2011-07-17 19:04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중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백악관에서 만났다. 지난해 2월 이후 17개월 만에 또 만난 것이다.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은 티베트와 티베트인 고유의 종교, 문화, 언어전통의 유지에 강한 지지를 되풀이했다”며 “중국의 티베트인들에 대한 인권보호 중요성도 강조했다”고 밝혔다. 예상대로 중국은 아주 격렬하게 반응했다.
마자오쉬 외교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중국 내정에 대한 간섭이며, 중·미 관계를 손상시켰다”고 분노를 표시했다. 또 추이톈카이 외교부 부부장은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의 로버트 S 왕 대사대리를 급히 불러서 엄중히 항의했다. 장예쑤이 주미 중국대사도 미국 국무부에 정식 항의했다.
중국 반발은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고, 올해도 예견됐었다. 역시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해처럼 달라이 라마를 집무실(오벌오피스)이 아닌 사적인 공간(관저의 맵룸·map room)에서 만났다. 회동 장면을 언론에 직접 공개하지 않았고, 나중에 두 사람이 같이 있는 사진만 배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 반발을 의식해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이고, 미·중 파트너십이 중요하며, 중국과 티베트 간 이견해소를 위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미·중 관계 악화를 뻔히 예견하면서 달라이 라마 면담을 강행한 것은 여러 가지 의도가 내포된 것이다. 우선 의회가 달라이 라마와의 면담을 통해 중국의 인권문제를 강력히 제기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외면할 수는 없다. 더구나 자신의 지지층인 진보 진영과 거의 모든 인권단체들이 강력히 원하는 것이다.
남중국해에서의 미·중 간 군사적 갈등을 겨냥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남중국해는 중국이 핵심이익으로 간주하는 곳이다. 미국은 중국의 항모 건조를 앞두고 현재 남중국해에서 베트남과 합동 군사훈련을 하는 등 일종의 무력시위를 하는 중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의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인 티베트 이슈를 건드린 것이다. 달라이 라마 접견은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활용할 수 있는 압박 카드 중 하나다. 그래서 미·중이 갈등 관계에 접어들 때면 달라이 라마가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기가 쉬워진다는 분석도 있다. 달라이 라마와 미·중 관계의 함수관계다.
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