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신창호] 해병대 이야기
입력 2011-07-17 17:42
해병대라는 단어가 연일 언론의 화두가 되고 있다. 탤런트 현빈의 입대로 주목받더니 자살 가혹행위 총기난사 같은 말이 붙여졌다. 그동안 해병대는 국가 방위의 첨병이라는 이름으로 통했다. 해병대 훈련은 군 안에서도 혹독한 걸로 유명하다. 생사의 경계까지 대원들을 몰아붙여 최고의 전사를 길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가혹한 훈련은 사병의 병영생활 안에서는 고참의 폭압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극한 생존훈련을 마친 해병대원들이 신참에게 얼토당토않은 가혹행위를 일삼고, 감당하지 못하는 병사를 따돌린다. 최근 이어진 자살과 총격 사건은 바로 이 해병대식 질서 유지법을 감당하지 못한 병사들의 폭발이라 여겨진다.
인간사회 어디에서나 텃세가 존재해 왔다. 이미 자리를 잡은 이들은 새로 온 사람을 업신여기고 자기들만의 특권을 누렸던 것이다. 인류 역사는 ‘텃세 없애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모든 인간이 공존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으니 말이다.
선진국일수록, 문명사회일수록 텃세는 자리 잡지 못한다. 이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횡포 부리는 자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텃세는 구성원 모두가 이를 죄로 여기면 순식간에 사라지기 마련이다.
해병대도 이런 방식으로 텃세를 없애보려 했을까. 아닌 것 같다. 고참들의 모욕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병대 2사단 K이병 사건만 봐도 그렇다. 가족의 분노와 항의에 해병대 측은 “개인 신병 비관일 뿐”이라 발뺌해 왔다. “입을 다물라”거나 “기다리라”는 말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를 학대했던 고참들은 돈을 모아 K이병 가족에게 전달했다 한다. 도대체 무슨 배짱인가. “때리고 괴롭혀서 미안해”하는 건가. 기독교인 신병의 성경을 찢고 하나님까지 모욕했던 고참들이 이를 견디지 못해 수류탄을 터뜨리려 했던 그 병사보다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할 순 없다.
몇 주 사이에 4명의 해병대원이 병영생활을 이유로 자살했고 2명이 동료에게 총격을 가한 혐의로 구속됐다. 국방장관이 선진 병영문화를 외치고, 장군들이 회의를 거듭하고 있지만 해병대는 그 어떤 사건에 대해서도 시원스레 진상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의문을 제기하는 언론엔 명예훼손 소송을 운운하고, 사령관의 사퇴도 번복하면서 여론이 잠잠해지기만 기다리는 꼴이다. 위풍당당하다는 해병대의 모습은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형국이다.
신창호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