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오늘을 살게 하는 목적
입력 2011-07-17 17:31
창세기 3장 1∼13절
오늘 우리는 바쁘게 허겁지겁 삽니다. 엊그제가 1월이었는데 벌써 2011년의 절반을 훌쩍 넘겼습니다. 바쁨에 휩쓸려 빨리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한번쯤은 진지하게 자신에게 던져봐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왜 사는가?’ 신앙적 질문으로 바꾼다면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여기에 나를 두신 목적은 무엇인가?’
성경은 우리를 창조하고 오늘을 살게 하는 목적에 대해 이렇게 답합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사 43:7)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오늘 우리가 여기에 사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 사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마귀와 합작해 스스로 영광을 취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넘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의 자리를 취하려는 시도에 대해 사망을 선고하셨습니다(창 2:16∼17). 하나님은 창조 목적을 거스르는 데 대해 단호하게 처벌하십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죽고 말았습니다. ‘심장의 멎음’은 조금 유예되었지만, 관계에서 죽음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한 몸이었던 아담과 하와는 서로 분리되었습니다. 서로 남이 된 것입니다. 수치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포장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금령을 어긴 것을 추궁하자 아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한 여자 때문입니다”(12절). 아담은 자신의 불의한 행동을 합리화하고 그 책임을 전가하였습니다. 대신 스스로에게는 관용을 베풉니다. 전형적인 인생의 목적을 상실한 자의 특징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인간관계에서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합니다(8절). 인간 본연의 자리를 이탈하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마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동산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질문합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은 단순한 장소나 지리적 위치에 대한 질문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마땅히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할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본질적 물음입니다. 진정으로 ‘자기 자리 찾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가득 담겨 있는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묻습니다. “자네, 원래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딘지 아는가?”
우리가 사는 목적은 오로지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이것뿐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그리스도인 되게 한 목적도 그것뿐입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5∼6)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그의 영광스러운 은혜(glorious grace)를 찬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생을 정신없이 바쁘게 살고 있습니까? 오늘 내가 왜 사는지, 또 왜 살아야 하는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습니까? 목적을 알지 못하고 헛갈림 속에서 방황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9절) 그리고 “어서 돌아오라”고.
류익태 목사(푸른마을침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