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독교 성지 순례] 데이비스 선교사 고난의 전도행군 기억하리…

입력 2011-07-17 17:39


(20)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

경남 창원공원묘원 내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에는 1세기 전 이 땅에 복음을 전했던 호주 선교사들의 유품이 전시돼 있다. 세월은 흘러도 흔적은 남고, 선교사는 떠나도 그 정신과 사역은 남는다는 것이 실감되는 현장이다. 기념관 뒤편에는 순직 호주 선교사묘원이 있다. 이곳엔 1889년 10월 2일 처음 경상도 땅을 밟은 조셉 헨리 데이비스(1856∼1890) 선교사 등 부산·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교육과 의료 봉사활동을 펼치다 순직한 8명의 선교사 묘비가 나란히 서 있다. 묘 일부가 방치되고 훼손된 것을 경남성시화운동본부(대표회장 구동택 감독)가 지역 교계의 정성을 모아 2009년 9월 19일 ‘호주 선교사 묘원’으로 조성했다.

◇선교사의 길에 후회란 없다=운동본부는 이듬해 10월 기념관을 건립했다. 개관식을 10월 2일로 잡은 것은 데이비스 선교사가 첫발을 디딘 날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운동본부는 이날을 ‘경남 선교의 날’로 선언하고 매년 기념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데이비스 선교사는 이 땅에 짧지만 큰 여운을 남겼다. 한국에 온 지 겨우 6개월 후인 1890년 4월 4일, 부활절을 하루 앞둔 토요일 부산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회로 하여금 한국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다.

“선교사는 그가 택한 사역의 길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 법이다. 선교사의 길이야말로 내가 어릴 적부터 꿈꾸어 왔던 희망이며, 나의 청년기의 목표이며,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 가운데서 주를 위해 일하는 것은 나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데이비스 선교사의 일기에 적힌 내용이다. 그는 바울의 선교 원리를 따랐다. 선교사가 전혀 없는 지역으로 가서 일하기를 원했다. 데이비스는 잠시 인도 선교사로 있다가 ‘은자의 나라’ 조선으로 선교지를 옮겼다.

그는 한국 땅에 오자마자 전도여행을 떠나려고 했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 일단 계획을 미뤘다. 5개월 동안 두문불출하며 한국어 공부에 몰입한 결과, 일상적인 대화는 물론, 가벼운 설교까지 할 정도가 됐다. 그는 강렬한 선교 열정을 지닌 인물이었다. 꽃샘추위가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쪽 바다를 향해 길을 재촉했다. 서울을 떠나 수원과 공주를 거쳐 부산에 이르는 길을 쉬지 않고 걸었다.

약 20일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그의 운명은 거기까지였다. 건강을 돌보지 않은 강행군으로 천연두에 감염되고 곧 폐렴까지 겹쳤다. 마지막 5일은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그는 동료 선교사의 품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는 늘 그랬다. 1889년 호주 멜본을 떠나 시드니, 홍콩, 일본을 거쳐 한국에 이르는 긴 여정과 서울 도착, 언어 공부, 선교 지역 답사, 부산까지 이르는 긴 여정 속에서 그는 늘 자족하고 감사해했다. 죽기 불과 5일 전인 1890년 3월 31일까지의 일상이 기록된 일기 속에는 그 어떤 형태의 불평도 없다.

◇최후의 방어선이 선교 전진기지로=기념관이 자리 잡은 지역은 인적이 드문 일명 ‘진동고개’로 불리는 곳이다. 남해고속도로 내서IC에서 옛길을 따라 진동·통영 방향으로 자동차로 10분 정도 달리면 나온다. 진동고개는 한국전쟁 때 부산 방어선의 최후 보루였다. 수많은 한국과 미국의 젊은이들이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숨져간 피의 고지였다. 기념관 건립을 주도한 성재호 경남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은 “이 능선이 사수됨으로써 인천상륙작전이 가능해졌으며 나아가 대한민국을 공산세력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었다”면서 “바로 이 땅에, 경남지역에 복음을 전해준 호주 선교사를 기리는 묘원과 선교 120주년 기념관을 건립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라 아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념관은 9900㎡(3000평) 대지 위에 248㎡(75평) 규모의 흰색 바탕 단층으로 지어졌다. 외벽은 통유리로 안이 훤히 보인다. 전시 유품에는 호주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성경책과 1897년 출간된 한영사전이 눈에 들어온다. 이 밖에 부산진교회 당회록과 예원배 목사가 밀양마산교회에 기증했던 교회 종 등도 시선을 모은다. 선교사들은 1960년대 마산 지역의 미망인과 고아를 돕기 위해 수예품을 호주에 보내 팔았는데 당시 만들었던 수예품도 전시돼 눈길을 끈다.

기념관을 나와 왼쪽으로 가면 호주 선교사 묘원으로 가는 십자가 통로가 나온다. 양쪽 벽엔 성금을 낸 분들의 이름이 가득하고 126명 호주 선교사들의 흔적이 담긴 사진이 붙어 있다. 조그마한 연못 뒤엔 순직한 호주 선교사들의 묘비가 참배객을 맞는다. 해질녘, 돌아서는 순간 김소엽 시인이 쓴 추모시비가 발길을 잡았다.

“…순교자의 붉은 피는 지금도 우리 안에 꽃불로 타고 계시네…”

창원=글·사진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