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나면 못 참고 ‘욱’ 180도 돌변하는 당신 ‘충동조절장애’
입력 2011-07-17 17:25
당신은 혹시 평소 ‘욱∼’ 하면 참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내는 성향인가? 혹은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로울 것이 명백한데도 특정 행위에 대해 꼭 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과 욕구를 느끼고 실제 행동으로 옮긴 적이 있는가?
울컥하는 순간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충동조절장애’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다음부턴 꾹, 참아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다가도 번번이 솟구치는 화를 참지 못하고 폭언과 폭력을 일삼고, 돌아서면 후회하기를 반복한다면 한번쯤 자신을 찬찬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다혈질’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주위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드는 경우 말이다.
충동조절장애란 순간적인 충동과 함께 고조된 긴장감이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자기방어 기능이 약해져 스스로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정신 질환이란 뜻이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강은호 교수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자기 자신이나 남에게 해로운 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를 견디지 못하고 반복해서 되풀이하며,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긴장이나 흥분이 고조되고 막상 그런 행동을 수행하고 있으면 쾌감이나 만족감, 또는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정신질환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충동조절장애는 극심한 피로나 지속적인 자극, 정신적 외상 등에 의한 뇌 기능 장애, 특히 충동을 담당하는 변연계(가장자리계)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 교수는 “충동은 이성적 판단을 하는 뇌 속 전두엽과 변연계의 상호작용으로 조절되는데, 이 통제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경우 순간의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먼저 요즘 핵가족 시대의 자녀 양육 태도는 자녀가 뭘 하든 관여치 않는 방임과 학대, 아니면 지나치게 보호하는 ‘양극화 현상’으로 나뉜다. 두 경우 모두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만 아는 ‘인간형’을 만들 수 있다. 특히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라난 아이들은 성장기에 적절한 좌절을 경험하고 이를 견디는 힘을 기르지 못해 자기를 조절하는 능력에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는 “대가족 제도 아래에서는 부모가 못하는 일을 할아버지와 할머니, 형제가 대신할 수 있었으나 핵가족 시대엔 그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방송, 영화, 비디오, 인터넷 등의 다양한 멀티미디어 문화가 인간의 충동성과 공격성을 부추기는 한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게임 등을 통해 폭력물을 정기적으로 장기간 시청한 아이들은 문제 발생 시 해결책으로도 공격적인 방법을 선택하기 쉽다고 신 교수는 강조했다.
파킨슨병 치료에 사용되는 도파민호르몬 촉진제 같은 약물의 부작용으로 충동조절장애가 나타나기도 한다. 미국 메이요 클리닉 신경과 전문의 안하르 하산 박사팀은 임상 연구결과 도파민호르몬 촉진제를 복용하는 파킨슨병 환자는 충동조절장애가 나타날 위험이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22%나 높고, 이 같은 부작용 위험은 복용량이 많아질수록 더욱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충동조절장애로 나타나는 증상은 다양하다. 순간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갑자기 화를 내고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 외에 쇼핑 중독이나 게임 중독 같은 형태를 띠기도 한다. 국내와 미국에서 주로 쓰이는 정신과 진단 기준 체계인 ‘DSM-IV’는 병적인 도벽과 방화, 도박 중독도 ‘달리 분류되지 않는 충동조절장애’로 정의하고 있다.
충동조절장애를 극복하려면 누구보다 가족의 이해와 도움이 필수적이다. 심리 상담을 통한 행동수정과 약물 치료가 필요할 때도 있다. 약물로는 공격성과 충동성을 줄여주는 선택적 세로토닌 계통의 항우울제, 항경련제, 기분조절제 등이 사용된다.
강 교수는 “하지만 치료 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스트레스와 화를 털어내고자 하는 환자 자신의 노력이다. 요가나 묵상, 기도 등이 스트레스 해소와 분노 억제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