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앵콜 공연하는 연극 ‘수상한 흥신소’
입력 2011-07-17 17:24
겉모습은 멀쩡하나 게으른 고시생 ‘상우’, 예쁜 동네 책방 아가씨에게 정신이 팔려 있다. 그러나 평범한 삶을 꿈꾸는 상우에게 한 가지 걸림돌은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다. 상우는 고시를 그만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가게를 하나 차린다. 상우에게 갖가지 사연을 지닌 고객들이 찾아와 기상천외한 심부름을 시키기 시작한다.
‘수상한 흥신소’(사진)는 한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타인의 불행과 마주하며 세상을 이해하는 상우의 성장담이자, 슬픔에 젖은 사람들이 저마다 삶을 찾아가는 방식을 다룬 휴먼스토리이기도 하다. 소재 면에서 신선하지는 않다. 국산영화 ‘헬로우 고스트’는 이 연극의 개막보다 늦게 개봉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 드라마 ‘고스트 위스퍼러’ 등에서 익히 보던 설정이다.
뒤통수를 조이는 듯한 탄탄한 구성도, 단번에 시선을 붙드는 충격적인 소재도 부족한 듯한 이 연극은 뜻밖에 대학로를 찾은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초연에 이은 2차 공연에 돌입했다.
인터넷 블로그 등에는 네티즌들이 남긴 호평이 넘쳐난다. 관객들로 하여금 쉽게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건 보는 사람을 위안하는 듯 잔잔하고 따뜻한 이야기와 군데군데 쉴 새 없이 고개를 드는 유머다. 바싹 다가앉은 관객과 배우들이 직접 장난칠 수 있는 소극장 연극 특유의 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멀티’(일인다역을 맡은 배우)들이 보여주는 캐릭터의 향연. 30세 이하인 5명의 배우가 18개 캐릭터를 소화했는데, 10대 청소년부터 인생의 황혼녘에 접어든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패션쇼 하듯 나타났다 사라진다. 귀여운 소녀 역할을 맡았다가 삶의 세파에 찌든 유부녀를 연기하거나, 중년의 경비아저씨로 나왔던 배우가 젊은 조직폭력배로 나오는 식이다. 소극장 연극에서 일인다역은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사례이지만, 역할의 연령이나 분위기의 진폭이 이례적으로 크다. 젊은 배우의 앳된 얼굴을 감추기 위한 분장도 거의 하지 않았다.
32세의 임길호 연출은 “배우 김수미씨가 일용엄니 캐릭터를 28세에 연기했다고 들었다”며 “젊은 배우들이 나이든 역할을 맡으며 점차 농익은 연기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뮤지컬 ‘빨래’로 많은 팬을 확보한 배우 배승길의 연극무대 데뷔작이기도 하다. 전이랑 맹주영 제갈관 한승우 이초롱 등 출연. 10월 30일까지 서울 대학로 상명아트홀에서 공연한다.
양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