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속 도자기, 평면에 재현하다… 이승희의 ‘厚.我.有(후.아.유)’展
입력 2011-07-17 17:21
고향인 충북 청주에서 작업하던 도예 작가 이승희(53)는 2008년 중국 베이징에서 차로 23시간 정도 떨어진 도자기 마을 징더전(景德鎭)을 우연히 들렀다가 그곳의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됐다. 작업을 하는 사람들과 여기저기 놓여있는 도자기를 보는 순간 ‘뭔가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가족과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곧바로 그곳에 작업실을 꾸렸다.
그리고는 3년 동안 ‘보물찾기를 하는 심정’으로 작업에 매달렸다.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다음 달 14일까지 열리는 그의 개인전은 그동안의 작업 성과를 소개하는 자리다. 전시 제목은 ‘감정이 깊은 내가 있다’라는 감성적인 뜻을 담은 ‘厚.我.有(후.아.유)’로, 멀리서 보면 한 폭의 그림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입체감이 드러나는 평면 도자기 30여점을 선보인다.
작업은 숱한 수고를 필요로 한다. 먼저 흙으로 캔버스 같은 평면을 만들어낸다. 조금만 흐트러져도 울퉁불퉁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나무판 위에 부드러운 천을 깐 다음 흙을 바른다. 화면이 만들어지면 그 위에 수십 번씩 흙물을 발라 두툼하게 하는 방법으로 고려청자, 조선백자, 달항아리 등 도자기 모양을 본뜬다. 그런 다음 그림을 그려 유약을 바른 후 가마에 넣는다.
대부분 1m가 넘는 평면 도자기여서 습도와 온도가 조금만 맞지 않아도 뒤틀리거나 깨지기 십상이다. “기껏 힘들여 만들었는데 가마 안에서 깨져 못쓰게 되면 너무 속상해요. 어쩔 수 없죠 뭐. 아직 노하우가 부족한 탓이려니 해요.” 작가는 이번 전시회를 앞두고 길이 2m가 넘는 대형 작품도 제작했으나 작업 과정에서 모두 깨져 아쉬움을 남겼다.
징더전에서 작업하면서 또 한 가지 힘들었던 기억은 2년 전 홍수로 작업실 일대가 물에 잠겨 일주일을 뗏목을 타고 다닌 일이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말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빚어놓은 도자기들이 물에 녹아 없어지는 거예요.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2∼3년에 한 번씩 오는 홍수라서 차분하게 대처한 덕분에 어떤 인명 피해도 생기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우여곡절을 거친 그의 작업은 전통적인 도자 기법으로 새로운 평면 회화의 길을 열고 있다는 평가를 얻었다. 박물관 등에서 볼 수 있는 도자기의 표면을 평면화시키고 그 평면화된 도자기를 흙물을 쌓아올리는 방법으로 다시 입체로 바꾸는 작업으로 ‘도자기의 완벽한 평면적 재현’이라는 성과를 올린 것이다. 도자기와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의 이미지가 이색적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평면으로 재현된 도자기는 물론이고 유약이 지닌 색감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유약은 보통 불에 들어가면 물이 되어 낮고 깊은 곳으로 흐르면서 흙에 융화돼 빛과 색이 완성된다. 이런 특성을 드러내는 작품들도 함께 출품했다. 보는 거리와 각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다가오는 도자기의 평면 회화가 ‘숨은 보물찾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02-725-102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