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모방심리 자극해… 10대 소녀에게 화장 권하는 ‘상술’

입력 2011-07-16 11:26


“토썬(스킨푸드 토마토 썬크림) 위에 산다라박 비비(에뛰드 진주알 맑은 비비크림)를 바르고, 윤아 파데(이니스프리 파운데이션)와 앵두알 틴트(에뛰드 진주알 맑은 틴트)로 마무리해야 화장이 완성돼요.”

15일 오후 서울 명동의 한 화장품 로드숍에서 교복을 입은 채 테스터로 내놓은 비비크림을 바르던 중학생 정수정(15)양의 손길은 꽤 익숙해보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화장을 시작했다는 정양은 “이젠 교복을 입고도 소녀시대 윤아처럼 돋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화장하는 ‘소녀’들이 부쩍 늘고 있다. 교복을 입고 화장품 가게에서 자연스레 화장을 하거나 사복을 입고 색조화장을 한 채 거리를 활보하는 여중고생들이 쉽게 눈에 띈다.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학교 사물함에 ‘학교 비비’로 불리는 화장품을 넣고 다니며 생일선물로 화장품을 교환하는 게 유행하고 있다. 최근 한국미용학회지에 실린 통계를 보면 15세에 화장을 시작한 학생이 23.8%나 됐고 16세 23.5%, 13세 이하 17.7%, 14세 17.0% 등이 뒤를 이었다.

이런 소녀들의 화장열풍은 걸그룹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들의 화장법까지 따라 하려는 청소년들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어린 걸그룹이 어른스러운 화장과 차림새로 인기를 끌면서 청소년의 모방심리를 자극했다는 것이다.

중저가 화장품 업체들도 10대를 겨냥한 저가 화장품을 쏟아내고 있다. 광고 모델도 소녀시대·카라·2NE1·f(x) 등 걸그룹을 앞세우고 있다. 여중고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립글로스와 비비크림 등은 가격이 2000원대부터 2만원대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대개 1만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구입이 가능해 용돈을 타서 쓰는 10대들에게 인기가 높다. 더욱이 업체들마다 한 달에 한 번 30~50%까지 세일 행사를 하고, 걸그룹의 사진이 담긴 사은품을 나눠주거나 여중고생들에게 직접 화장법 등을 시연해주고 있다. 심지어 화장품 용기에 인기 있는 만화 캐릭터를 그려 넣어 초등학생들의 호기심과 구매욕을 자극하는 제품들도 있다. 10대들에게 화장을 하도록 유혹하는 상술이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아무런 제재 없이 10대들에게 화장품을 판매하는 업체의 상술을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생활용품 전문 업체 다이소는 10대들의 화장열풍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지난 3월 초등학생에게 색조화장품을 팔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어 화장품 판매대를 운영하는 전국 300개 매장에서 판매중단 문구를 내거는 한편 점원들에게 관련된 내용을 교육하기도 했다. 식약청 관계자는 “걸그룹 열풍에 편승해 10대들을 대상으로 립스틱·매니큐어 등을 판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면서 “특히 색조화장품으로 인한 초등학생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용기·포장 등에 만화 캐릭터나 도안을 사용해 화장품을 제조·수입·판매하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지도·단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화장품 업체 관계자는 “화장이 10대들의 문화로 자리 잡은 만큼 억누르려 해서는 안 된다”며 “다만 교복을 입고 색조화장품을 구입하는 것은 제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