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사이버 안보 전략 발표] 심각한 사이버 테러 땐 전쟁 간주 미사일 응징

입력 2011-07-15 22:31


美, 사이버 공간 ‘제5 전장’으로 공식 규정

지난 3월 펜타곤(미국 국방부)이 경악했다.

미사일 추적 시스템과 무인항공기 개발계획 등 해킹당한 국방 관련 파일 2만4000건이 민감한 내용이기도 했지만, 더욱 충격적인 것은 ‘단 한방’에 당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해커(들)는 군 관련 네트워크를 단 한 차례만 침투해 절취한 것이다. 순식간이었다. 이로부터 4개월이 지난 14일 미 국방부는 사이버 공간을 전장으로 선언하며 방어개념에서 공세적 전략을 발표해 주목을 끌고 있다.

◇현실화된 제5의 전장(戰場)=윌리엄 린 국방부 부장관은 이 해킹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는 특정 국가를 거론하지 않은 채 “외국 정부기관의 공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가 그랬는지 잘 알고 있다”고까지 얘기했다. 미 언론들은 그동안의 사례로 봐 중국과 러시아, 특히 중국을 지목하는 분위기다.

미국이 첫 사이버 안보 전략을 발표하면서 사이버 공간을 공식적으로 제5의 전장으로 규정한 것은 이 같은 배경을 깔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5월 사이버사령부를 출범시키고 4만명의 군인,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전문부대를 운영하고 있다. 한 해 예산은 1억5000만 달러(약 1600억원)이다. 중국도 지난 7월 ‘인터넷 기초총부’라는 사이버전 부대를 창설했다. 일부 군 교육기관이나 직업학교에서는 전문 해커를 양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펜타곤이 더욱 우려하고 있는 것은 테러리스트 그룹이다. 이들이 해킹 능력과 장비를 확보할 경우 단순한 침투가 아니라 국가안보 시스템을 공격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전 세계 미군 사령관이 적에게 사이버 공격을 가하고, 외국에 대한 사이버 첩보 활동을 할 수 있는 상황과 범위를 규정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펜타곤은 전 세계 수십개국에서 1만5000개 이상의 컴퓨터 네트워크와 700만여개의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공세적 사이버 전략=린 부장관이 공개한 사이버 전략에는 기밀이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이 빠져 있다. 이 방안은 주로 사이버 방어 능력을 제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 대응에는 선제적 공격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린 부장관은 만약 사이버 공격으로 대량 인명살상 및 피해, 중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었을 경우 백악관은 군사력 사용을 검토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군 당국자의 말을 인용, “만일 적국이 사이버 공격으로 전력을 차단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중공업 단지를 미사일로 타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공격 행위는 전쟁구성 요건에 해당되며, 전쟁법에 따라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린 부장관은 ‘전쟁법에 따라 사이버 공격에 비례한 정당한 군사적 대응 권리’로 이를 공식화했다.

제임스 카트라이트 합참 부의장도 “방어적 조치와 공격적 조치의 비율이 9대 1로 돼 있는 현재의 사이버 전략은 역전돼야 한다. 최소한 5대 5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공세적 사이버 전략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사이버사령부는 컴퓨터 네트워크 방어뿐 아니라 대통령 명령으로 사이버 공격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리언 파네타 신임 국방장관은 지난주 의회 청문회에서 “사이버 안보가 재임 중 가장 중요한 과업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음번 ‘진주만 공습’은 미국의 전력망, 금융망, 정부 전산망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사이버 공격”이라고 단언했다.

여기에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도 기정사실화했다. 독단적인 선제공격에 따른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사이버 공간에도 집단적 자위권 개념을 도입한 것이 주목을 끈다. 현실공간에서처럼 사이버 공간도 테러를 당할 경우 막대한 피해가 나기는 마찬가지라는 인식도 깔려 있다. 또 동맹국들과 사이버 규율, 원칙을 공동 개발하면서 중국 등 사이버 가상적국들에 대한 국제공조 체제를 서두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