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백혈병 사망 소송 새 국면… 美 컨설팅사 “근무환경과 인과관계 없다”
입력 2011-07-14 18:25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의 유족과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인정 여부를 놓고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 공장의 근무환경이 암 발생과는 관련이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백혈병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근무 환경 사이의 연관성을 인정한 법원 판결과 배치된 것이어서 향후 항소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미국 안전보건 컨설팅 회사인 인바이론은 14일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사업장에서 “백혈병 발병과 근무 환경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발표했다. 인바이론은 삼성전자 의뢰로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의 근무환경을 조사했다. 인바이론 폴 하퍼 소장은 “조사 대상 라인을 직접 정밀 조사한 결과 모든 측정 항목에서 위험물질에 대한 노출 수준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현재 문을 닫은 기흥 3라인에 대해서도 삼성전자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작업장을 재구성해 노출 정도를 연구한 결과 백혈병이나 림프종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어떤 과학적 인과관계도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는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다 숨진 황유미, 이숙영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의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 거부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행정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발병 원인이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이런 요소들이 백혈병을 발병시켰거나 적어도 발병을 촉진시킨 걸로 보인다”고 밝혔다. 근로복지공단은 항소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인바이론의 조사 결과에 대해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문제를 지적해온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인바이론이 삼성에서 얼마나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제공한 자료를 가지고 조사를 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반올림은 15일 근로복지공단의 항소결정과 인바이론의 조사 결과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유족 측의 반발을 의식한 삼성전자는 퇴직 이후 암으로 투병하는 임직원들에 대해 근속기간, 발병시점, 수행 업무와의 상관관계 등을 따져 조만간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번 조사 결과가 삼성전자와 근로복지공단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이미 1심 재판부도 백혈병 원인과 작업 환경이 무관하다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두 차례 역학조사 결과를 놓고도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 관계자는 “재판부가 인바이론의 조사 결과가 신뢰할 만한 것인가를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맹경환 김수현 노석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