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해병대다움과 성도다움

입력 2011-07-14 18:11


마태복음 5장 3∼12절

15년 전 해병대의 군종목사로 백령도에서 재직하던 시절, 지금도 잊지 못할 만남이 있었습니다.

어느 더운 여름날 사곶 해안에서 대원들이 IBS훈련(해병대수상공동체훈련)을 한다기에 먹을 것을 준비해 위문을 떠났습니다. 그때 저를 태워주었던 지프 운전병이 바로 잊을 수 없는 만남의 사람입니다. 병장을 달고 있기에 “전역이 얼마 남았느냐?”고 물었더니 “1주 남았다”는 대답이 왔습니다. “그런데도 왜 후임에게 물려주지 않고 이렇게 직접 운전하느냐?”고 했더니, “해병대는 제 삶을 정말 많이 바꿔 준 은인이기에 전역하는 날까지 이렇게 해서라도 은혜를 갚으려 합니다”라는 놀라운 대답이 왔습니다. 어찌나 흐뭇하고 고맙던지, 준비한 위문품을 먼저 하나 건네고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으로 훈련장에 도착한 제겐 또 한 번의 감동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가 오후 4시경이었는데 저는 부대장에게 잠시 동안의 휴식을 허락받고 인격지도교육 시간을 가지며 넌지시 꾀부리는 말을 건네 보았습니다. 제가 후보생이던 시절, 누가 그 시간쯤 훈련장을 방문해 과업종료 때까지 시간을 끌어주면 훈련을 받지 않아도 되던 기억을 되살려 유난히 힘들어 보이는 이등병 하나를 일으켜 세워 물은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목사님이 너희를 찾아왔는데, 시간도 많이 지났고 훈련도 할 만큼 했으니 남은 시간은 노래 부르고 장기자랑하면서 훈련을 끝내면 어떨까?” 그랬더니, 대뜸 이 친구의 말이 “아닙니다. 목사님, 오셔서 격려해주신 건 감사하지만 저희는 훈련이 더 좋습니다!” 어찌나 그 대답이 군인답던지….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깜짝 선물로 준비한 전자시계 하나를 꺼내놓고 행운권 추첨을 했습니다. 뽑힌 한 장병이 앞으로 나와 대뜸 하는 말이 “저희 내무반에 갓 들어온 막내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받은 시계를 즉석에서 건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장병들은 일제히 그 선임을 향해 박수를 치고…. 어찌나 멋지던지 역시 해병은 해병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그 해병대가 좀 시끄러운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것도 저의 마지막 군 생활의 추억이 있는 그곳에서 해병대 전체를 우울하게 하는 구타와 왕따, 자살과 총기 난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군인다움에 있어선 그 어느 조직보다 자존심 강한 우리 해병대가 무의미한 ‘악’과 ‘깡’과 ‘복종강요 문화’로 그 명예와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국민들이 해병들에게 기대하는 ‘해병대다움’은 무엇일까요? 제가 그날 만났던 그들처럼, 해병대에 대한 고마움으로 인한 충성심, 쉼보다 훈련을 더 좋아하는 강인함, 아래 병사를 진정으로 위하는 사랑 그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성도도 마찬가지겠지요. 사람이라 해서 다 사람다운 것은 아니며, 학생이라고 다 학생다운 것이 아니듯 교회를 다닌다고 모두가 성도다운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날 구원하셔서 새사람 되게 하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고, 주를 위해 받는 고난을 기뻐하는 강인함이 있으며, 연약한 성도와 이웃을 측은히 여겨 돕는 위대한 사랑이 성도를 성도답게 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선 예수님도 산상수훈을 통해 우리에게 교훈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

늘 주의 은혜에 대해 가난한 마음이 있어 감사할 줄 알고, 낮은 자에 대해선 불쌍히 여기며, 의를 위한 것이라면 어떤 고난도 피하지 않는 사람. 그가 바로 성도다운 성도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사회가 어둡습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다운 사람’을 찾기 어려운 이때에 해병대는 해병대답고, 성도는 성도답고, 학생은 학생답고, 공무원은 공무원답고, 교회는 교회다우면 얼마나 좋을까요?

김종훈 목사 (오산침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