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의 일본선교 이야기2]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입력 2011-07-14 17:45
[미션라이프] 지난 6일 일본 동북부 중심도시 센다이에는 비가 내렸다. 하늘은 잿빛이었다. 3·11 동일본대지진 발생 이후 4개월이 지났지만 센다이를 비롯해 미야기와 이와테현 등 피해지역에서는 아직도 정상적인 복구작업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정정섭 회장 등 일행과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센다이역에 도착한 이후 자동차로 15분 정도를 달리니 처절한 지진의 상흔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처가 쓰레기 더미였다. 산처럼 쌓아놓은 폐 자동차들도 눈에 띄었다. 엄청난 크기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소나무 윗부분에 걸려 있는 모습도 보였다. ‘저걸 인간이 하려면 얼마나 많은 힘이 들까’ 생각하니 새삼 신의 의지에 반(反)한 인간 의지의 유약성을 실감하게 됐다. 하긴 30년 동안 축적될 쓰레기가 일순간에 쏟아져 왔으니….
일행을 인도한 일본국제기아대책기구 세이케 히로히사 상무는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의 피해 범위는 500km가 넘는다고 했다. 그는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서는 인내가 가장 필요하다”면서 “일본은 지금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으며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행을 센다이와 인접한 바닷가로 인도했다. 바닷가까지 가는 동안 역시 지진과 쓰나미의 피해를 목도할 수 있었다. 바닷가 인근의 소나무들은 모두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휘어져있었다. 쓰나미의 영향. 과연 강력했다. 모래사장 앞 계단 여기저기에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꽃들이었다. 꽃 옆에는 말라비틀어진 김밥과 과자 등이 보였다. 아마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 땅을 떠난 가족을 위해 마련한 것이리라. 모두가 숙연해졌다.
일본 경찰에 따르면 이번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11일 현재 숨지거나 실종된 피해자들은 모두 2만891명에 달한다. 1897년 2만2000여명의 피해자를 낸 메이지산리쿠 지진 이후 가장 큰 피해 규모.
국제기아대책기구협회 사무총장인 구톡수 목사의 인도로 모두 함께 기도했다. 말레이시아인으로 쿠알라룸푸르에서 대형교회를 일군 그는 기아대책 사역에 헌신, 전 세계를 다니며 떡과 복음을 전하고 있다. 구 목사는 “일본이 시련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 달라”면서 “특히 이번 지진을 계기로 일본의 잃어버린 영혼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기원했다.
수많은 인명이 사라지고,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지역이 부지기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위대한 힘 또한 도처에서 발휘되고 있다. 일본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인들이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힘을 보탰다. 한국에서도 기아대책을 비롯해 월드휴먼브리지 등 각 NGO와 교회, 시민단체, 개인들이 구호물자를 보냈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는 지진 발생 이후 60여억 원에 달하는 물자를 피해지역에 보냈다. 센다이 외곽에는 일본국제기아대책기구가 운영하는 거대한 물품창고가 있다. 대형 마트와 같은 그곳에는 전 세계에서 들어온 물자들로 그득했다. 한국 상표가 붙은 물품도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물품을 갖고 피해지역에 들어가기도 하며 피해자들이 직접 창고를 방문, 필요한 것을 갖고 가기도 한다.
이번 재난을 계기로 세계는 일본인들, 아니 인간 지성의 위대함을 목격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결코 인간됨을 버리지 않고 질서를 지키며 남을 배려하는 그들의 모습은 센다이의 기아대책기구 물품 창고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물건을 한꺼번에 여러 개 갖고 가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필요한 만큼 한두 개씩만 집어 들었다. 현장에서 만난 하시라와 교코(56)씨는 지진으로 인해 집과 사업장을 모두 잃었다.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이곳 물품창고에 와서 가족과 남은 종업원들을 위한 필수품을 갖고 간다. 그녀는 우리 일행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정정섭 회장에게도 연신 감사를 표시했다. “여러분들 덕분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은 일본 정부보다도 더 고마운 분들입니다.”
한국인들이 보내는 선한 기부, 사랑의 물품 하나하나가 잘 전달되고 있었다. 그것들이 얼마나 그들에게 위로가 되는지는 현장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실감하기 어려우리라.
물품창고에는 일본 각지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을 보았다. 너무나 맑고 밝은 모습이었다. 가슴이 찡했다.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얼굴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문에 지금 사람들은 센다이 등 동북지방에 오는 것을 꺼려한다. 모두가 떠나려 한다. 그럼에도 모두가 떠나는 그 곳에 기를 쓰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오직 사랑으로!
센다이 시내에서 약 1시간 정도 자동차로 달리니 지진 피해가 심한 이시노마키시가 눈에 들어왔다. 도로는 다시 정비되었고 곳곳에서 편의점들이 문을 열어 통행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현지 한 편의점 입구 창에는 한국 그룹 동방신기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다시 평온을 찾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역시 지진의 상흔은 너무나 크고 깊었다.
그곳의 한 공공건물의 피난소에서는 여러 명의 한국인들이 피해자들을 위해 음식을 짓고 있었다. 도쿄요한교회 성도들이었다. 도쿄요한교회는 김규동 목사를 비롯한 전 성도들이 지진 이후 헌신적으로 피해자들을 섬기고 있다. 지진 직후에는 수많은 성도들이 휴가를 얻어 400여km를 달려서 피해지역에 갔다. 그들이 있었기에 언젠가 일본인들이 “너희는 그때(지진으로 우리가 힘들었을 때)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있게 됐다.
어찌 이들 뿐이겠는가. 모두가 떠나는 센다이를 지키며 피해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한국인 선교사들, 주님의 사랑으로 일본인들에게 무료 사랑의 콘서트를 열어주고 있는 송솔나무 집사, 수많은 NGO 사역자들, 그리고 십시일반으로 헌금한 한국의 교회들, 중보 기도를 해 준 이름모를 성도들…. 이들이 있기에 수많은 부조리와 아이러니에도 불구하고 이 땅은 살만하다.
가까운 나라 일본의 동북부. 거기에는 자연재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무력한 일본인들과 그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이려고 혼신의 힘을 다 하는 사랑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랑이 더 큰 사랑을 낳으리라. 동일본대지진후원문의=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02-544-9544), 후원계좌=국민은행 059-01-0536-352(예금주:기아대책), ARS 후원:060-700-0770 (한통화 2000원)
센다이=글·사진 이태형 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