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에 성악 접목시키는 ‘뮤즈맘 프로젝트’… “성악하는 여자 애도 잘 낳는대요”

입력 2011-07-14 18:04


①성악가는 임신 중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왜? 노래하니까.

②성악가는 아기도 잘 낳는다. 왜? 복식호흡에 단련돼 있으니까.

③성악가의 아기는 언어 발달이 빠르다. 왜? 뱃속에서부터 엄마와 노래로 소통했으니까.

이 세 가지 가정을 전제로 실험을 하기로 했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는 다음 달부터 임신 12주 이상인 여성 6∼10명을 대상으로 출산에 성악을 접목하는 임상실험에 들어간다. 임신 12주는 태아가 소리를 듣기 시작하는 때. 임신부들에게 성악을 가르치며 임신 기간 스트레스 추이부터 산통의 정도와 신생아 상태까지 종합 평가할 계획이다. 삼성서울병원은 왜 이런 실험을 시작한 걸까.

계기

지난해 12월. 소프라노 정수경(본인 요청으로 나이는 뺌)씨는 기획사 아이콘스엔터박스 오치우(53) 대표로부터 갑작스레 공연 부탁을 받았다.

“공연장은 아니고 삼성서울병원 세미나장인데, 노래해줄 수 있어요?”

“네?”

“청중은 의사들이고, 한 곡만. 깨끗하고 상쾌한 느낌이 드는 노래로.”

“그러죠, 뭐.”

“궁금한 게 있는데, 옛날부터 태교음악은 기악곡, 연주곡이 많더라고. 그거보다 엄마 목소리가 아기한테 좋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해요?”

“엄마 목소리가 최고죠.”

“여자들 임신하면 스트레스도 많고, 분만 공포에 시달린다는데. 수경씨는 어땠어요?”

“전 그런 거 없었는데요? 성악가들은 임신 스트레스 별로 없어요. 노래 잘하는 여자가 애도 잘 낳는다고 우리끼리 웃으면서 얘기해요. 워낙 호흡에 자신 있으니까.”

오 대표는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에서 임신부를 위한 프로그램 기획을 의뢰받고 석 달째 기획안을 준비하던 터였다. 이 병원 산부인과는 월 400명이 넘던 내원 산모가 저출산 세태로 3분의 2가량 줄어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다양한 직군과 연령대의 임신부들을 인터뷰하며 방법을 찾다가 정수경씨에게 ‘정답’을 들었다고 했다. 출산에 중요한 산모의 호흡법, 바로 성악의 복식호흡이라는 거였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를 비롯해 의사 200여명을 모아놓고 정씨가 먼저 강단에 올랐다. 소개말도 없이 2분50초 분량의 이탈리아 가곡 ‘마티나타(아침의 노래)’를 불렀다. 다들 의아해했다. 오 대표의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됐다.

“행복하십니까. 여러분처럼 아기를 낳을 엄마도 행복해야 합니다. 몇 가지 검사해서 ‘아무 문제없다’ 한 마디 해주는 곳이 산부인과인가요? 산부인과는 엄마가 행복한 곳이어야 합니다.”

임신부는 늘 불안하다. 갑자기 불어난 체중이 버겁고, 그래서 크게 좁아진 자신의 활동 범위가 답답하고, 곧 닥쳐올 출산의 고통이 무섭다. 이런 불안을 초음파 검사로는 해소해줄 수 없다. 산부인과에 산모가 줄어드는 이유? 임신과 출산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출산 세태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임신부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이건 병원 서비스의 문제다. 그는 이렇게 주장하며 ‘뮤즈맘(Musemom)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실행

산부인과 진료에 성악을 도입하자는 뮤즈맘 프로젝트 제안에 솔깃해한 것은 산부인과 의사이면서 분자치료센터 소장인 이제호(65) 박사였다. 그는 삼성서울병원이 개원한 1994년부터 음악이 임신부와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 박사는 이왕 하는 김에 임상실험도 해보자고 했다.

뮤즈맘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음악과 예술을 관장하는 여신 뮤즈와 엄마를 뜻하는 영어 맘(mom)의 합성어다. 성악의 발성과 호흡법을 임신부들에게 가르쳐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안정적 출산을 돕자는 취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막상 시작하려니 부를 만한 곡이 몇 곡 없다. 많이 알려진 성악곡은 대개 슬프고 애절한 사랑 노래다.

소프라노 정씨가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임신했을 때 슈베르트 자장가의 가사를 바꿔 태중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줬다. “호화찬란이 우리 아이 태명이었거든요. ‘잘 자라∼ 잘 자라∼ 노래를 들으며, 옥같이 예쁜 우리 호화야∼’ 그런 식으로 불렀어요.”

슈베르트 자장가만 부를 수도 없는 일. 그래서 아예 새로 곡을 만들기로 했다. 아기를 위한 노래, 엄마를 위한 노래, 자장가, 출산 축하곡 등 오로지 임신과 출산을 위한 성악곡을 오 대표가 작사하고 정씨가 작곡했다. 그리고 하나 더. 엄마가 뱃속 아기에게 불러줄 노래를 직접 작사토록 해 그 아기만을 위한 맞춤곡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이 노래들을 매개로 임신부에게 성악가의 호흡과 발성법을 전수하는 것이다.

지난달 20일 삼성서울병원 강당에 임신부 400여명을 앉혀 놓고 성악 레슨을 병행한 콘서트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노래를 부르며 아기의 태동을 처음 느껴봤다’ ‘아기와 내가 하나 된 느낌이었다’ ‘레슨 시간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 등 다양한 반응이 올라왔다.

효과

임상실험에 싱잉테라피스트(singing therapist)로 참여하고 있는 정씨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알레르기 비염 때문에 임신 기간 내내 무척 힘들었어요. 그래도 마음만은 늘 기뻤어요. 그리고 아이 낳을 때는요. 저는 양수가 먼저 터지는 바람에 34시간 진통 끝에 출산했거든요. 보통 산모라면 견디기 힘든 아주 긴 진통이었죠. 저는 호흡이 훈련돼 있어서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 분만 때도 힘을 줘야 할 타이밍에 정확히 힘을 줄 수 있더라고요.”

그녀는 호흡은 분만에, 발성은 태교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성악의 호흡은 복식호흡이 기본이다. 몸에 많은 힘을 가해야 하는 흉식호흡은 성악가에겐 금기라고 한다. 복식호흡은 숨을 길게 끌며 폐활량을 최대한 늘리는 호흡법과, 짧게 끊어가는 스타카토 호흡법 등으로 나뉜다. 임신부가 분만 과정에서 간호사들에게 줄기차게 듣는 호흡 요령을 성악가들은 평소에 훈련해온 셈이다.

발성은 태아와의 교감을 도와준다. 오 대표는 태아와의 대화라는 뜻에서 이 교감을 ‘태화’라고 표현했다.

“발성은 소리의 빛깔을 좌우해요. 무슨 말이냐. 밝은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면 소리가 밝게 나와요. 슬픈 얼굴로 부르면 반대의 소리가 나오죠. 성악 발성은 눈과 입 모양으로 소리의 빛깔을 만들어가는 발성이에요. 감정을 노래로 표현할 수 있게 되면 어떻겠어요. 임신부는 좋은 감성을 태아에게 전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정씨는 노래를 불러주며 낳은 아이가 두 살쯤 됐을 때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한 테마를 제법 그럴 듯하게 부르는 걸 들었다. “임신 중에 하루 종일 노래를 해서 그런지, 평소 음악을 많이 들려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멜로디와 이태리어 가사를 흉내 내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저출산 세태로 위축된 산부인과 병동의 현실이 소프라노의 출산 경험과 한 기획자의 아이디어를 만나 ‘성악+출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과연 이 실험은 기대만큼 효과를 보여줄까.

고개를 갸웃거리자 정씨가 하는 말.

“노래방 가보셨죠? 어때요. 속이 시원하지 않던가요? 임신은 엄청난 스트레스거든요. 체형이 바뀌고 호르몬 변화로 모든 게 달라지죠. 그럴 때 노래하는 거예요.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겠죠. 그리고 어느 순간 아기와 소통이 시작될 거예요.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죠?”

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