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의대 박문일 학장 “저출산은 남자 탓 텐·텐·텐 하세요”
입력 2011-07-14 18:05
남자 때문이라는 거다.
34년 경력의 베테랑 산부인과 의사, 박문일(59·한국모자보건학회장) 한양대 의대 학장이 강단에 설 때는 예외 없이 이 얘기를 역설한다. “한국의 저출산은 남자 때문이다.”
그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보건복지부 박용주 저출산고령사회정책실장이 지난 11일 박 학장을 보건복지부 월례조회에 초청했다. 그는 공무원들 앞에서 같은 주장을 펼쳤다.
“여자들이 아기 낳으려 해도 도대체가 환경이 받쳐주질 않아요. 남자들이 바뀌어야죠.”
저출산, 왜 남자 때문일까. 요즘 부쩍 강의 다닐 일이 많아졌다는 그를 지난 5일 서울 행당동 한양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이날도 그는 “남자들이 반성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분만
-저출산은 남자 때문이다. 이 주장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 남자들이 많을 텐데.
“저출산 정책이 뭔가요. 베이비플랜이에요. 이 플랜에 남자들이 참여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남자들은 그러지 않아요. 남자들이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 출산 장려 정책은 전부 산모 중심입니다. 임신하면 얼마 지원해주고 애 낳으면 장려금 주고 그게 전부예요. 남자의 역할과 지원에 대한 방안이 빠져 있어요. 남편은 아내가 임신할 수 있도록 좋은 정자를 공급해야 합니다. 또 아내가 행복하게 아기를 낳도록 하려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도와줘야 해요. 그래서 임신 기간엔 아내가 원하는 대로 다 들어줘야 합니다. 분만할 땐 아내의 진통을 느끼고, 출산 후엔 같이 길러야 할 의무가 있어요. 선진국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일인데 우리나라 남편들의 의식수준이 아직 거기까지 못 미쳐요.”
-요즘 남편들은 그래도 많이 나아지지 않았나요?
“멀었어요. 아직도 분만실에 들어가길 꺼리는 남편들이 얼마나 많다고요.”
-학장님은 (남편으로서) 분만실에 들어가셨어요?
“전 안 들어갔죠.(웃음) 그때는 들어가는 풍조가 아니어서.”
사실 대한민국 남편들을 산부인과 분만실에 끌어들인 주인공이 박 학장이었다. 1999년 국내 최초로 수중 분만을 시도한 게 그였다. 남편이 산모와 함께 욕조에 들어가 진통부터 출산까지 전 과정에 참여하는 분만법이었다. 수중 분만의 첫 주인공은 뮤지컬배우 최정원씨였다. 최씨가 남편의 도움을 받아 아기를 낳는 모습은 TV로도 방영됐다. 당시로선 충격이었다.
요즘은 남편뿐 아니라 가족이라면 누구나 산모의 동의를 얻어 분만을 지켜볼 수 있다. 분만실에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가 출산에서 남편의 기여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정도로 확산됐다. 10여 년 전에는 분만실이 남편이 들어가서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는 게 박 학장의 설명이다.
-분만환경이 저출산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가요.
“출산이 뭐예요. 출산은 축제죠. 사람이 사람을 낳는 것처럼 기적적인 일이 어디 있어요. 원했던 임신이니까. 그런데 남편이, 환경이 축제를 방해하죠. 분만실에 안 들어가는 남편이 여전히 많고, 비밀스럽고 음침한 귀퉁이에 분만실이 배치된 병원도 많고. 축제의 장에서 출산해야 엄마도 아기도 행복하죠. 출산의 기억이 나쁘면 다음 아기를 가지려 하겠어요? 첫 경험이 마지막 경험이 돼 버리는 거예요. 저출산의 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예전보다는 분만 환경이 많이 달라졌죠.
“2000년부터 분만환경개선운동도 시작됐고. 참 많이 좋아졌지요. 분만전문병원에 가면 거의 가족분만실에서 분만하고. 그러나 아직 달라져야 할 게 많아요.”
-예를 들면.
“마취제나 분만촉진제를 남용하고, 회음부절개를 함부로 하는 것은 문제에요. 출산 직전 임신부에게 ‘침대에 올라가 움직이지 말고 누워 계세요, 아무 것도 먹지 마세요’ 하는데 왜 먹지 말아야 해요? 일생일대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하는 날에 왜 굶겨요. 말이 돼요? 밥 먹었다가 토해서 음식물이 기도로 들어갈까 봐, 갑자기 수술할 경우가 생길까봐, 그래서 먹지 말라는 거예요. 이런 경우가 발생할 확률은 5∼10%에 불과한데 전체 산모에게 적용해요. 그래선 안 돼요.”
기자는 2009년 5월 출산한 직후 경기도 분당의 한 산후조리원을 찾았다. 거기서 만난 한 산모는 분만 과정에서 겪은 고충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애도 안 낳아 본 남자 인턴이 내진을 하는데 어찌나 아프던지. 그게 싫어서 둘째는 안 낳겠다고 결심했다니까.”
무심한 남편에 대한 원망을 늘어놓는 산모도 있었다.
“남편이 회식하고 술에 떡이 돼서 들어온 거야. 새벽에 진통이 오는데 택시 타고 혼자 병원에 갔잖아.”
임신
-임신거부증을 다룬 책 ‘나는 임신하지 않았다’의 머리말을 쓰셨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임신거부증 환자가 있나요.
“우리나라엔 임신거부증이라는 병명 자체가 없어요. 다만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산모는 많죠. 비극적인 임신이죠. 본인이 원치 않았거나, 상대가 원치 않는. 10대 미혼모가 아기를 낳고 버렸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잖아요. 임신 준비 부족에 의한 거부증으로 볼 수 있겠죠. 그런 관점에서 임신거부증을 말한다면 우리나라는 외국보다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원하는 임신도 부담스러워하는 여성이 많습니다.
“마초국가니까요. 그게 문제예요. 그래서 남자의 역할이 너무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가 말한 ‘남자’란 무심한 남편뿐 아니라 남성 중심의 시선과 구조까지 포함한다. 지하철에서 임신부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승객부터 여직원의 임신 소식을 반기지 않는 직장과 여성이 자꾸 임신을 미루게 만드는 상황들까지.
-남자도 임신했으면 좋겠어요.
“같이 낳아야지. 사실은 임신만 못할 뿐이지 같이 낳는 거거든요. 수정란이 정자 반, 난자 반이잖아요. 전부 여성에게 책임을 떠안기는데 엄밀히 말하면 남자도 같이 낳아야 하는 거예요. 불임도 남자가 잘 하면 생기지 않아요.”
그는 저서 ‘태교는 과학이다’에서 ‘별난 정자가 말썽이다’라고 썼다. 습관성 유산의 30% 정도는 면역학적 원인에 의한 것으로 정자와 난자가 서로 충돌을 일으켜 발생하는데 대부분은 ‘별난’ 정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불임도 별난 정자 때문인가요.
“저는 세상에 불임은 없다고 해요. 난임만 있지. 남자한테 책임이 있죠. 그래서 텐텐텐(ten ten ten)을 강조하는 거예요.”
텐텐텐
-텐텐텐이 뭔가요?
“임신 전 남편이 준비하는 10개월, 임신기간 태교에 힘쓰는 10개월, 출산 후 부부가 아기를 함께 돌보는 10개월 해서 텐텐텐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지난해부터 우리 학회에서 시작했는데, 복지부와 공동 캠페인을 해볼까 생각중이에요.”
-임신 전 남편이 뭘 준비해야 하는 거죠?
“좋은 정자를 만들어야죠. 술 줄이고 담배는 완전히 끊고, 커피도 줄이고. 5∼6개월은 열심히 몸을 만들어야 돼요. 그때 만든 정자가 3∼4개월 뒤 수정돼요. 어제 만든 정자가 오늘 수정되는 게 아니란 말이죠. 그렇게 성숙된 정자가 난자의 껍질을 뚫고 들어가려면 2∼3주가 더 걸려요. 그러면 4개월도 더 걸리죠. 그래서 10개월이에요. 남자가 몸을 잘 만들면 웬만한 불임은 해결할 수 있어요.”
-두 번째 10개월과 마지막 10개월은요?
“그 다음 10개월은 임신을 잘 유지하고 수고해야 하는 때예요. 당연히 그 기간에 남편은 아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줘야죠. 남편뿐 아니라 누구든 임산부가 원하는 건 다 들어줘야 해요. 그 다음 10개월은 부부가 같이 애를 봐야 해요.”
-애 낳고 10개월을 휴직하라는 건가요.
“(남편도) 휴직하면 좋죠. 최고지. 하지만 집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함께 돌보라는 거죠. 애 낳은 맞벌이 여성들이 집에만 들어가면 지옥이잖아. 왜? 집에 들어가면 남편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지옥인 거야. 부부가 같이 애를 돌보는 게 중요해요.”
-현실성이 떨어지는데요.
“해야 돼요. 남성의 문화,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저출산은 결코 극복할 수 없습니다. 선진국처럼 남성이 2분의 1 역할을 해야 돼요. 십수 년간 능동적 출산(active birth)과 부드러운 출산(gentle birth ) 운동을 벌여왔어요. 능동적 출산은 산모가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분만법을 선택하는 것이고 부드러운 출산은 남편도 힘을 합쳐서 아내의 출산을 돕자는 것이에요. 의사는 조력자로 도움을 주는 거죠. 분만환경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으니까 이제는 텐텐텐 운동을 벌여야 해요. 저출산은 남자의 책임이다, 남자도 애를 낳는 과정에 참여하고 같이 기르자는 겁니다.”
그는 이 이야기를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특강을 갈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얘기해 교과서에도 싣자고 할 작정이다.
그가 남편들에게 당부한 ‘분만실 행동요령’이 있다.
“그냥 멍∼하니 있는 게 아니라,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같이 손을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