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의 野口] 사회인 야구가 불쌍해

입력 2011-07-14 17:55


동료 작가들과 몽골에 다녀왔다. 지평선이 보이는 끝없는 초원을 걷다 그곳이 매혹적인 천연잔디구장으로 보이면서 문득 몽골 야구 대표팀이 떠올랐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야구방망이 달랑 한 자루 들고 출전해 화제가 된 팀이다. 그들은 비록 아시안게임에서 실력 발휘를 못했지만 야구를 향한 순수한 열정과 무모한 도전정신이 나를 뭉클하게 했었다.

내가 뛰는 사회인 야구팀도 초반에 방망이가 하나뿐이던 고비사막 같은 시절이 있었다. 헬멧도 최소한 네 개는 있어야 만루 상황에서 모두 머리에 뚜껑을 덮고 있을 텐데 두 개 뿐이었다. 그런 가여운 시절을 통과해 지금은 야구장비만으로도 승용차 한 대가 가득 차는 팀으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야구 참 돈 많이 깨지는 취미라는 걸 깨달았다. 유니폼 맞춰야지, 계속 소모되는 야구공 사야지, 경기 끝나고 뒤풀이 해야지, 보호 장비나 개인용품 질러야지, 아오, 가뜩이나 얇은 지갑이 너덜거릴 정도다.

사실 안 미끄러지고 착용감 좋은 스파이크나, 공이 저절로 잡히는 것 같은 글러브에 욕심내다 보면 끝이 없다. 누군가 새 방망이를 구입해 안타를 펑펑 때리는 걸 보면 그 방망이를 지르고 싶어 침을 질질 흘리게 된다. 툭 갖다 댄 것 같은데 타구가 쭉쭉 뻗는 걸 보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돈을 아주 많이 벌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비싼 장비가 없어도 야구를 하는 것만으로도, 캐치볼만 해도 즐거운 시절이 있었는데 거기서 너무 멀리 온 건 아닐까 뒤돌아보며 나는 장비 욕심을 간신히 참고 있다.

다만 야구 하면서 가장 많은 비용을 차지하는 ‘구장시설’이 열악한 건 못 참겠다. 사막에서 횟집 찾는 것만큼 구장 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회인 야구인들은 야구만 할 수만 있다면 어디라도 달려가지만 대부분의 구장은 어지간히 멀다. 우리는 서울에서 야구를 시작했지만 이천, 파주, 철원, 양평 등 안 가본 교외 구장이 없다.

몇 시간씩 걸려 서울 외곽으로 나가봤자 야구장 시설은 엉성하다. 슬라이딩하기 어려운 딱딱한 그라운드에서 툭하면 부상당하고, 불규칙 바운드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수비를 한다. 지금 몇 백만 원을 내고 간신히 가입한 리그의 운동장도 외야엔 농구 골대와 축구 골대가 있다. 추신수가 와도 부닥칠까 무서워서 외야 뜬공을 놓칠 것 같은 환경이다. 우리나라 야구 인프라가 이토록 유치한 것에는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그렇지만 프로팀도 이상한 야구장에서 시합하는 나라에서 사회인 야구 구장 따위 말하면 뭘 하나 허무해지기도 한다.

어쨌거나 몽골 땅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넓고, 광활한 초원은 야구가 가능한 상태도 아니긴 했지만 그곳의 초원을 잠깐 새파란 천연 잔디 구장으로 착각했을 때 입맛이 참 씁쓸했다. 암만 떠들어도 변변한 대책도 없는 나라에서 야구 좀 해보겠다고 지갑을 풀어헤치며 그라운드에 나서는 사람들이나, 방망이 한 자루 들고 광저우 가던 몽골 야구팀이나 불쌍하긴 마찬가지 아니냐 싶어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