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문지방 넘기] 한국교회의 현안, 바울 ‘눈물의 편지’가 해답
입력 2011-07-14 20:47
고린도후서를 읽는 것은 마치 ‘조각 맞추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바울의 복잡한 감정이 혼란하게 뒤섞여 있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서 읽지 않으면 전체의 조각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우선 사도 바울은 ‘큰 눌림과 슬픔(걱정)’ 속에서 ‘많은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고후 2:4). 이 편지를 ‘눈물의 편지’라고 부릅니다. 그런가 하면 상처받은 교인들을 위로하고(고후 2:7), 또한 자신이 겪은 위로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위로의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고후 1:3∼5). ‘위로의 편지’입니다. ‘슬픔과 눈물’에서 ‘기쁨과 위로’로! 바울의 감정은 극에서 극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입니다. 헬라 지역의 중심지인 고린도에 교회를 세운 후에 바울은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바울이 떠난 후에 고린도 교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몇몇 사람들의 부추김으로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을 반대하고 배척하는 무리들이 생겼습니다. 바울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통과 슬픔으로 ‘눈물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눈물의 편지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눈물의 편지에는 예전과 다르게 아주 강경한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지금까지의 편지가 훈훈한 봄바람 같았다면 ‘눈물의 편지’는 늦가을의 매서운 서릿발 같았습니다. 이 편지를 받아본 고린도 교인들은 ‘두렵고 떨림’에 휩싸여서 그들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바울에 대한 오해를 모두 씻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은 너무 기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위로와 화해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고린도후서에는 이 ‘위로의 편지’와 ‘눈물의 편지’가 섞여 있습니다.
‘눈물의 편지’와 ‘위로의 편지’는 바울서신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성경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눈물의 편지’와 ‘위로의 편지’ 중에서 무엇을 축으로 읽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집니다. 저는 ‘눈물의 편지’를 축으로 고린도후서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눈물의 편지’는 고린도 교인들의 잘못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고, 매섭게 회개를 촉구하고 있으며, 회개하지 않을 경우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눈물의 편지’를 쓴 목적은 단 하나, 교인들을 ‘회개’로 이끌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골라 읽기’의 습관에 빠지기 쉽습니다. 심판, 책망, 비판의 말은 메기 잔등에 뱀장어 넘어가듯 슬쩍 넘어가 버리고, 축복과 위로와 형통의 말만 깊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습관은 자칫 우리의 신앙을 ‘회개 없는 축복’으로 이끌게 됩니다.
요즘 한국교회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요? 성경 곳곳에 널려 있는 ‘눈물의 편지’를 읽는 것이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 편지 속에 담겨 있는 책망과 경고를 ‘우리 자신을 향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심히 슬퍼하며 회개하는 일(고후 7:9∼10)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참 ‘위로’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오종윤 군산 대은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