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쟁이, ‘토지’와 보낸 화려한 휴가

입력 2011-07-14 17:44


휴가 마지막 날 저녁은 아쉬움과 여유로 가득해야 하건만, 나는 책 대여점을 향해 헉헉거리며 뛰어가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인아주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내밀었다. “마지막 권이에요.” 내일이 입시 날인데 아직 시험 범위를 다 보지 못한 수험생 심정이었다.

그해 휴가 때 작정했었다. 글자 한 자 보지 않겠다. 책 만드는 게 직업이라고, 쉴 때도 책을 봐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가방을 꾸리면서 메모지 한 장 넣지 않았다. 고향 부산에서 피서객들을 관람하며 그동안 교정지 보느라 혹사시킨 눈에게 보답하겠다고, 옛 친구들 만나 신나게 놀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휴가 첫날, 결심대로 밤늦게 놀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발목을 삐었다. 한 달 전에도 삐어서 이미 신통치 않았던 발목이 말 그대로 끝장이 났다. 휴가는 요양이 됐다.

목적이 없어지면 습관이 나온다. 그중 최고는 밥벌이의 습관이다. 책 대여점으로 향했다. 그래, 책이나 읽자. 그런데 그곳 책장 제일 위 칸에 ‘토지’ 전집이 턱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순간, 편집자인데도 한국의 대표 작품인 이 책을 완독하지 못했다는 내면의 고백이 밀려왔다. 기껏해야 드라마 속 어린 서희의 독살어린 장면만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인물에 적응하지 못해 책장을 덮어야 했던 몇 번의 좌절이 되살아나면서, 날아가 버린 휴가에 대한 보상 심리가 발동했다. 5부로 구성된 총 21권. 남은 시간이 5일이니 하루에 읽어야 할 예상 권수는 4+α.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겠지.

첫째 날은 예상 밖으로 순조로웠다. 평사리의 몰락한 최참판 댁 이야기는 의외로 머릿속에 많이 남아 있었다. 드라마에 나왔던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 거야”라는 서희의 명대사 부분이 소설과는 어떻게 다른지 찾아서 어머니께 읽어드리는 여유까지 부렸다. 둘째 날, 예정대로 2부로 넘어갔다. 서희의 복수를 신나게 읽어 내렸다. 그리고 셋째 날이 됐다. 만주의 겨울바람처럼 강단 있던 서희 마님처럼 대여점을 향하는 나는 의기양양했다. 빌리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대여료를 깎아주겠다고 선심 썼던 주인아주머니는 아쉬운 기색이었다. 다 읽을 줄 알았으면 그냥 제값 받을 걸.

그런데 그날 저녁, 9시 뉴스가 시작할 때까지 나는 9권 하나를 끝내지 못해 헤매고 있었다. 의병과 망명객들이 우르르 등장하고, 만주 서울 진주를 종횡무진 오고 갔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낯익은 평사리 인물들이 잇따라 죽음을 맞이했고, 서희 마님은 허무함에 시달리고 있었고, 내 뇌는 용량을 초과한 버거움에 허우적거렸다. 한 작가가 25년 동안 집필한 대작을 닷새 안에 끝낼 거라 생각했던 오만함의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오기라기보다는 이번에도 실패하면 앞으로 다시 못 읽을 거라는 두려움이 먼저였다.

꾀부려 건너뛰려 했다가 뒤엉켜버린 부분들을 다시 되짚어 돌아갔다. 책을 읽는 자세가 바뀌었다. 묵묵히 한 줄 한 줄을 읽어 내려갔다. 새벽까지 책을 보다가 잠들었다. 그렇게 한 권 한 권, 15권을 넘어가는 순간부터는 더 이상 익숙한 이름들을 찾지 않고 있었다. 세대가 바뀌고, 식민지 시대의 풍경이 바뀌고, 주인공들의 이름이 바뀌고….

나중에는 내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이 나를 읽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를 타러 가는 날, 나는 마지막 권을 대여점 반납기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충분하게 충전됐다는 느낌과 함께. 그 다음해 봄, 박경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한번 뵌 적도 없으나 나는 오래 그 분을 생각했다. 만약 ‘토지’를 다 읽지 못했다면 더 마음이 쓰였을까 아니면 반대였을까.

김보경 웅진지식하우스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