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노조 삼성 ‘복수노조 시대’ 열리나… 에버랜드 ‘설립신고서’ 제출

입력 2011-07-13 21:26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던 삼성그룹에 실질적인 복수노조 시대가 열렸다. 삼성에버랜드 직원 4명은 13일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에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노조 명칭은 ‘삼성 노동조합’이다. 조직 대상은 삼성그룹 관계사 및 협력업체의 정규직·비정규직 근로자다.

박원우 노조위원장은 “3년 전부터 민주노조 건설에 뜻을 모았지만 삼성에서 노조 만들기가 힘들었다”며 “두려움이 앞서지만 삼성 노동조합 조합원 권익을 보호하고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노조는 삼성 계열사를 포괄하는 노조로 출발한다. 지금은 삼성에버랜드 직원 4명만 가입했지만 노조 설립 움직임이 있는 삼성전자, 삼성SDI 등 다른 계열사 근로자의 추가 가입을 기대하고 있다. 삼성노조는 아직 상급단체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민주노총 가입이 유력하다.

이들은 지난달 삼성에버랜드에 신규 노조가 설립되는 등 ‘어용노조’가 대거 출현할 조짐을 보이자 대응 차원에서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 노조법이 정한 교섭창구 단일화 조항에 따르면 사측이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고 7일 이내 교섭을 요구하는 다른 노동조합이 없으면 그 노조가 2년간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갖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삼성노조의 신고사항을 검토한 뒤 신고필증 교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별다른 미비점이 발견되지 않으면 18일 이전에 신고 절차가 끝나고 노조가 정식 출범할 수 있다.

삼성그룹 78개 계열사 가운데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화재, 삼성정밀화학, 삼성중공업, 삼성메디슨, 호텔신라, 에스원 등 8곳에 노조가 설립돼 있었고, 최근 삼성에버랜드 노조가 설립됐다.

대부분 계열사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기존 노조가 유지되고 있거나 복수노조 금지 조항을 악용해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세운 이른바 ‘유령노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는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삼성전자 각 사업장과 주요 계열사에 우선 노조를 세우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반면 삼성 주요 계열사들은 노조 설립 움직임에 잔뜩 촉각을 세우고 복지 향상과 고충 처리를 통해 직원들이 노조를 세워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신생 삼성노조가 외연을 확대해 삼성그룹의 뿌리 깊은 무노조 경영 철학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노사 관계를 정립할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삼성그룹 근로자들의 호응에 달려 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