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사계] 왕의 변기에 쿠션이…

입력 2011-07-13 18:08


궁궐에도 비가 그치지 않으니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왕궁의 살림살이를 볼 수 있는 곳이 창덕궁이다. 황제에서 이왕(李王)으로 격하된 치욕의 현장이지만, 먹고 누고 자는 일상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그 구체적인 삶의 흔적 가운데 문화재급은 박물관으로 옮겨지고 나머지는 붙박이로 남았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창덕궁’전에 많은 유물이 나왔다. 귀하기로는 국보 ‘동궐도’가 으뜸이지만 관람객들은 임금의 이동식 변기 앞에 많이 모인다. ‘매화틀’ 혹은 ‘매우틀’이라고 불리는 이 변기는 나무로 만든 좌대와 그 안을 들락거리는 청동용기 ‘호자(虎子)’가 한 세트다. 살갗이 닿는 부분에 부드러운 우단 쿠션을 달았다.

왕이 변의를 보이면 복이나인(僕伊內人)이 도우미로 나선다. 호자에는 여물처럼 잘게 썬 풀이나 짚이 깔려있다. 궁녀는 변을 그 곳과 손을 정성껏 물로 씻겨 드리고 결과물은 내의원에 보내 건강을 체크했다. 그러나 63.5×56㎝ 크기의 좌대를 보면 안쓰럽다. 왕의 대사(大事)에 쓰인 용기가 이토록 용색하다니, 쿠션에 그려진 당초문이 무색하다.

손수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