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금빛 해안선 그림같은 집 하나 지어볼까… ‘명품 해돋이’ 경북 영덕 바다

입력 2011-07-13 17:33


고려 말 대학자인 목은 이색(1328∼1396)의 외가인 경북 영덕은 예로부터 경치가 수려하고 물산이 풍부했다. 괴시리마을에서 태어난 목은이 영덕의 경치와 물산을 주제로 많은 글을 남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목은집’에서 “고향 영덕의 경치가 동방의 으뜸”이라며 “건강할 때에 땅 가려 집 짓고 해돋이의 빛을 한 번 마셔야겠네”라고 읊었다.

해돋이가 장관인 영덕의 해안선은 약 53㎞로 남쪽의 장사해수욕장에서 북쪽의 고래불해수욕장까지 12개 해수욕장과 울창한 송림은 물론 그림 같은 항·포구를 품고 있다. 최근에는 이 해안선을 따라 50㎞ 길이의 ‘블루로드’가 선보여 바다와 산, 그리고 강을 벗한 트레킹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영덕 바다 여행의 출발점은 포항시와 이웃한 장사해수욕장. 동해안을 달리는 7번 국도와 인접한 장사해수욕장은 길이 900m, 폭 50m. 동해에서는 드물게 경사가 완만해 바나나보트, 제트스키 등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친다. 울창한 송림은 텐트를 치거나 해송 그늘에서 휴식을 즐기는 곳.

그러나 장사해수욕장은 한국전쟁의 아픈 상처를 보듬고 있다. 맥아더는 북한군의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인 1950년 9월 14일 새벽 5시에 학도병 등으로 구성된 상륙부대를 장사에 투입한다. 태풍으로 배는 좌초되고 적의 집중포화로 수많은 학도병이 목숨을 잃었지만 상륙에 성공해 적의 전의를 상실하게 하고 퇴로를 봉쇄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아담하고 한적해 가족이나 연인들이 즐겨 찾는 부흥해수욕장과 남호해수욕장을 지나면 지대가 높아 강구항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삼사해상공원. 호텔 등 숙박시설과 횟집 등이 밀집한 관광단지로 경북대종, 천하제일화문석, 인공폭포, 분수대, 공연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바닷가 언덕의 영덕어촌민속전시관에는 어민들의 삶과 풍습, 어류, 어구 등 귀중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영덕대게 집산지인 강구항에서 축산항을 거쳐 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영덕의 속살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비경의 연속이다. 주왕산국립공원에서 발원한 오십천이 바다와 만나는 강구항은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를 촬영했던 곳으로 영덕 블루로드 출발점. 영덕대게 철은 지났지만 러시아산 대게요리와 동해바다의 싱싱한 횟감이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는다.

강구항에서 축산항에 이르는 27.8㎞ 길이의 강축해안도로는 깊고 푸른 동해바다와 한눈에 들어오는 단순명쾌한 해안선, 그리고 아기자기한 어촌과 포구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채명신 장군이 공병대를 투입해 1년여 공사 끝에 1970년 완공한 강축해안도로는 영덕해맞이공원에서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린다.

영덕대게 집게발을 형상화한 창포말등대 아래 바닷가를 에두르는 산책로는 해안도로를 거쳐 영덕풍력발전단지로 오른다. 24기의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야산에는 신재생에너지전시관과 캠핑장 등이 들어서 있다. 특이하게도 이곳에는 고산 윤선도의 시비 하나가 눈길을 끈다.

“봉우리 이름이 높은데 높지 않다는 고불봉이라 듣는 이 모두가 괴상하다고 하지만/ 늘어선 봉우리 중 가장 높고 특출하다네/ 어디에 쓰이려고 그렇게 구름 위 달 쫓아 홀로이 외롭게 솟았나/ 아마 좋은 시절 만나서 한 번 쓰일 때는 저 혼자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 될 것이네.”

병자호란 때 영덕에 유배된 고산 윤선도(1587∼1671)는 풍력발전단지와 인접한 고불봉(高不峯·235m)을 보고 시 한 수를 읊었다. 윤선도의 예언 때문일까.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하늘을 떠받치는 80m 높이의 풍력발전기 기둥이 고불봉 주위에 우뚝우뚝 솟아있고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동해안 달맞이 야간산행 행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해맞이공원에서 대탄해수욕장과 오보해수욕장을 거쳐 대게원조마을인 차유마을에 이르는 블루로드는 동해안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도중에 횟집으로 유명한 노물리와 돌미역 채취 등 어촌체험 및 바다낚시로 이름난 석리마을을 지난다.

차유마을에서 축산항까지 4㎞에 이르는 블루로드는 ‘초병의 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바위 위에 설치된 해안초소에서 밤마다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기 때문이다. 이 길은 바다와 인접한 구간인데도 숲길을 방불케 한다. 길을 걷다보면 바다에서 산책 나온 다리 붉은 게들이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기이한 모습도 목격된다.

숲길이 끝나고 모래길이 시작될 즈음 블루로드는 영덕 최고의 풍경을 그린다. 멀리 축산항과 삼각형의 죽도산유원지 및 등대가 보이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갯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진다. 이른 아침 이곳에서 만나는 아침 햇살은 목은이 동경했던 바로 그 빛이다.

호수처럼 고요한 축산항을 출발한 해안도로는 금세 대진해수욕장과 고래불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상대산을 만난다. 괴시리 전통마을 뒷산인 상대산은 바다, 산, 강, 들녘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소. 목은은 상대산 관어대에서 내려다보는 동해를 “물결이 움직이면 산이 무너지는 듯하고 물결이 잠잠하면 닦아 놓은 거울 같도다”고 노래했다. 또 “고래들이 떼지어 놀면 기세가 창공을 뒤흔들고 사나운 새 외로이 날면 그림자 저녁놀에 잇닿네”라고 찬탄했다. ‘고래불’이라는 지명은 ‘고래들이 노니는 불’이라는 뜻으로, 불은 모래해변을 뜻한다.

송천천 남쪽에 있는 대진해수욕장은 이문열 장편소설 ‘젊은날의 초상’에서 주인공이 고갯길에서 내려다보며 고독에 잠기던 바다. 상대산 등산로 표시판을 따라 솔밭 길을 조금 올라가면 나타나는 별장이 소설 속 주인공이 바다를 바라보던 위치와 비슷하다. 별장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씨가 3년간 요양한 곳이다. 마당에서 보면 대진해수욕장과 송천천, 장장 8㎞에 이르는 고래불해수욕장의 모래가 금빛으로 반짝인다.

목은 이색이 ‘땅 가려 집짓고 싶었던 곳’은 바로 이곳이 아닐까.

영덕=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