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킹스 칼리지 합창단 손주환군 음치 소년, 천상의 화음내다

입력 2011-07-13 21:31


12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 1층 로비. 핑크색 티셔츠를 입은 한 무리의 남자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사라졌다. 그 과정에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머나먼 영국 땅에 홀로 떨어져 있다 오랜 만에 귀국한 어린 아들과 부모의 애틋한 상봉이었다. 손동신(47·백석대 기독교학부 선교학 교수 겸 목사)·황옥경(47·서울신대 보육학과 교수)씨 부부와 아들 주환(12)군은 호텔 로비에서 서로 껴안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주환군은 이날 영국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 합창단의 일원으로 내한공연을 갖기 위해 입국했다. “아들을 오랜만에 만나는 겁니다. 안 보는 사이 훌쩍 커버렸네요. 이제 사나이 같은데요.” 손씨는 부쩍 자란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절대음감이 뛰어난 ‘음치 소년’

주환군은 1998년 영국 스코틀랜드 에버딘에서 출생, 34개월간 영국에서 성장했다. 부모의 유학기간이었다. 2001년 귀국, 한국에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3년을 마친 뒤 2008년 2월 어머니 황씨의 연구년에 다시 영국 케임브리지로 갔다. 주환군은 2008년 9월부터 킹스칼리지에 다니던 중 이듬해에 학교 합창단원으로 선발됐다. 이후 부모와 떨어져 혼자 생활하고 있다.

손씨가 말문을 열었다. “주환이가 세계적 합창단원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 노래를 시켜본 후 주환이에게 음치 판정을 내린 적이 있어요. 원래 노래 부르기를 싫어하고 부끄러워하는데 음치라고 하니 더 자신이 없어졌을 겁니다. 아는 노래라곤 ‘애국가’와 ‘독도는 우리땅’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합창단에 도전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라고 했다. 주환이는 또래들과 달랐다.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즐겨들었다. 특히 모차르트 음악을 좋아했고 어떤 곡은 특별한 부분을 지목하며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라고 말하곤 했다.

또 위인전을 좋아했다. 특히 모차르트와 이순신 전기를 좋아했다. 이순신의 자취를 좇아 천안 아산. 충무 등을 돌아보는 여행을 하자고 해 다녀왔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이 되는 해에는 모차르트 연주여행의 궤적을 따라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등을 여행하자고 조르기도 했다. 결국 2년 뒤 다녀왔다. 영화 ‘타이태닉’을 본 후엔 영화에 나오는 챔버오케스트라 연주곡 ‘내 주를 가까이’를 집에 와서 바이올린으로 연주했다.

“연주를 듣고 절대 음감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환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소리를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직접 연주해 봤고 음계를 바꿔가며 연주하는 걸 즐겼습니다.”

모차르트 전기를 읽은 후에는 만 6세 때부터 작곡을 했다. 특히 자신이 읽은 책의 한 대목에서 느낀 점을 악보로 옮기기도 했다. 그러나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다. 손씨는 “교회에서도 찬양을 부르지 않고 그저 서 있는 아이였다”고 말했다. 그저 피아노와 바이올린 레슨만 받았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다. 음치 판정을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은 주환군이 최근 다른 매체와 인터뷰하던 도중 알게 됐다.

어머니의 격려로 자신감 회복

어머니의 연구 휴직으로 외국에서 1년 동안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주환군은 위인전을 많이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과학자를 꿈꿨다.

“뉴턴이 케임브리지대에서 공부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어머니에게 외국에서 연구할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케임브리지대로 가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공부한 케임브리지대에 가서 한번 어떤 대학인지 보고 싶다는 겁니다.”

어머니와 영국으로 간 주환군은 공립학교를 다녔다. 버스를 타고 킹스칼리지를 지나다니며 차츰 동경심을 키워갔다. 어머니는 6개월 후면 귀국할 예정인데다 학비도 비싸 킹스칼리지 입학을 반대했다. 주환군은 어머니를 설득했다. 결국 시험을 봐서 한번에 붙었다. 학교를 다니며 합창단을 알게 됐다. 음악 선생님에게 오디션을 보고 싶다고 했다. 음감 테스트 후 오디션 허락을 받았다.

손씨는 오디션조차 반대했다. 10살짜리 아들이 혼자 영국에 남아 있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달간 설득해도 안 되자 주환군은 아버지를 합창단이 노래하는 채플에 모시고 갔다. 손씨도 허락했다.

“음치 판정을 받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워낙 음악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알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분명 그 이후 노래 부를 때 자신이 없었던 것만은 분명해요.”

주환군은 음치 판정이 좌절까지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자신감도 확신도 없었지만 그에게는 어머니의 믿음과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넌 음색이 예쁘니까 노래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고음도 잘 올라 갈 수 있다. 연습하면 된다”고 늘 격려해주었다. 주환군은 결국 해냈다.

손씨는 “자녀를 양육할 때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고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를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게 중요하다”며 “부모가 그런 역량을 갖게 되면 아이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창단 600년 최초의 한국인 단원

사실 주환군은 걱정이 많았다. 한 번도 노래 레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7개 국어로 불러야 하는데다 노래 전체를 연습하고 무대에 서는 게 아니라 음표를 보고 소리를 생각하다 바로 따라 불러야 했다. 낯설고 어려웠지만 지휘자와 대학생 합창단원들의 차분하고도 섬세한 지도 덕에 자신감을 찾았다.

주환군은 합창단 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연습생 과정을 마치고 무대에 오르고,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솔로를 하는 기록을 세웠다. 특별히 목 관리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큰소리를 지르는 것을 자제하고 유제품, 특히 우유나 인스턴트 음식은 피한다. 우유의 지방이 목을 탁하게 만들기 때문이란다.

합창단은 일주일에 최소한 6번의 예배에 참석해 합창을 한다. 영국에서는 일상 자체가 신앙인의 삶이다. 5대째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주환군은 자신의 생활에 기독교 문화가 짙게 배어있다고 말했다.

만 15세가 되면 졸업을 하게 된다. 주환군은 계속 음악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갖지 않고 있다. 처음에 영국에 온 목표가 과학자였던 만큼 아인슈타인과 같이 음악하는 과학자가 되는 게 장래 희망이다.

이번이 두 번째 한국공연인 킹스칼리지 합창단은 14일 오후 7시30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다. 15일엔 중국으로 출국한다. 지휘자 스티븐 클레오버리, 16명의 킹스칼리지 5∼8학년생, 15명의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 대학생, 2명의 오르간 연주자 등이 무대에 오른다. 공연의 주제는 ‘자연과 음악과의 조화’로 바흐, 모차르트, 알레그리, 프랑크, 포레 등의 주옥같은 합창음악과 소품들을 전한다.

주환군은 공연을 통해 과욕없는 해맑고 순수한 서정을 탁월하게 담아내는 영국 합창의 진수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소개한다. 레퍼토리인 교회음악을 통해 청중들이 기독교 문화와 전통을 음미하고 교회음악의 독특성을 깨닫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단원들과 이동하는 주환군의 뒷모습을 보며 미래의 음악하는 과학자, 한국의 아인슈타인을 그려 보았다.

■킹스 칼리지 합창단은

1441년 헨리 6세가 설립한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 교회의 성가대로 출발했다. 성가대는 매일 아침, 저녁 기도 시간에 노래했다. 16명의 소년 성가대원, 14명의 성가대원, 2명의 오르간 연주자로 구성된다. 소년 성가대원은 이 대학의 부속 초중학교인 킹스칼리지 학교 학생들이며 대학생 성가대원들은 다양한 전공을 가지 케임브리지대 킹스칼리지 재학생들이다. 지금도 예배당에서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찬양한다. 지난 600년 동안 매일 예배와 기도에 참여하고 저녁 찬양예배 이븐송에 나서며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1년에 두차례 만 6세 아동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한다. 정기 오디션 기회를 놓치더라도 음악성이 뛰어난 경우 만 9, 10세에도 응시 가능하다. 해외공연에서도 찬양곡만을 부른다.



글 최영경 기자·사진 이병주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