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의 집’ 이연순 원장·정은주 사무국장… 나눔의 선한 향기 ‘연꽃 모녀’

입력 2011-07-13 18:28


지난 11일 장맛비가 내리는 천안에서 만난 이연순(62·여·등대의 집 원장)씨는 연방 “행복합니다”라고 말했다. 오는 22∼23일 충남 천안시 직산읍 판정리 132-1에 위치한 등대의 집 연꽃동산에서 ‘2011년 연꽃축제 한마당’을 열기 때문이다. 올해로 7년째. 행사 수익금을 생활고에 시달리는 중증 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해 쓸 계획이라 더욱 감회가 크단다.

중증 장애인들을 돌보며 살고 있는 이씨가 연꽃축제를 연 것은 2005년 여름. 장애인시설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등대의 집을 신축하고 입주해 보니 주변 환경이 너무 열악했어요. 인근에 사료공장과 돼지 도축장, 고물상 등이 위치해 좋지 않은 냄새를 풍기곤 했죠. 그래서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연꽃이랍니다. 등대의 집 앞 8250㎡(2500평)에 이르는 저수지에 수십 그루의 연꽃을 심었지요. 지금은 여름이 되면 장관을 이루는 연꽃을 보러 많은 사람이 몰린답니다.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사진작가 분들이 촬영을 오곤 해요. 목사님 몇 분도 연꽃을 분양해 가셨고요. 특별히 등대의 집 식구들이 만든 연냉면과 연근떡, 연쌈밥, 연잎차, 연화주가 영양가 있고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천안 주민은 물론 멀리 부산에서까지 찾아오신답니다.”

축제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22일에는 등대의 집 사회복지법인 예맥재단 설립 7주년 기념식과 어린이 사생대회 시상식, 연음식 바자를 연다. 또 23일에는 연꽃을 포함한 수생생물 및 야생화와 나무 전시, 천연 염색 체험, 연잎차 시음과 장애 체험, 신나는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할 예정이다.

“나들이객이 찾아와 장애인의 친구가 되어주고 전통차를 마시며 심신을 달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놓았습니다. 무엇보다 연꽃축제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씨는 연꽃축제를 열면서 한동안 비난을 들어야 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불교의 상징인 연꽃축제가 웬말이냐는 비아냥이었다. 홈페이지에 항의성 댓글도 달렸다. 하지만 그녀는 연꽃축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연꽃도 분명 하나님이 창조한 식물입니다. 불교계가 하나님의 창조물을 가져다 상징물로 쓴 것일 뿐이지요. 중국에서는 불교 전파 이전부터 연꽃이 진흙 속에서 깨끗한 꽃이 달리는 모습을 속세에 물들지 않는 ‘군자의 꽃’으로 표현했고요. 또 종자가 많이 달리는 현실을 다산(多産)의 징표로 여겼답니다. 연꽃이 우리 인간과 자연에 얼마나 많은 교훈을 주고 가치있는 식물인지 안다면 그런 소리 쉽게 못할 겁니다…(호호).”

이씨는 이제 연꽃 예찬론자다. 그녀는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연꽃을 통해 인생을 배웠다. 더러운 이물질이 묻지 않는 연꽃잎을 바라보며 구별된 삶을 살 수 있었다. 또 물이 어느 정도 고이면 쏟아버리는 연꽃잎을 교훈 삼아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되었다.

연꽃잎은 수렴제·지혈제로 사용하거나 민간에서 오줌싸개 치료에 이용된다. 또 땅속줄기는 연근(蓮根)이라고 해 비타민과 미네랄의 함량이 높아 생채나 요리에 많이 사용된다. 뿌리줄기와 열매는 약용으로 하고 부인병에 쓴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유익한 식물이요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그녀의 인생도 비슷했다. 그녀는 부모도 버린 지적 장애인들을 친자식처럼 돌보며 산다. 그렇게 2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등대의 집에는 현재 10대 어린 아이부터 70대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뇌성마비, 발달장애 등을 앓고 있는 50여명의 지적 장애인들이 오순도순 살고 있다.

그녀는 아이들과 한 이불 속에서 뒹굴며 사랑을 나눈다. 한때 협심증, 허리디스크 등 건강문제가 생겨 아이들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보살핌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딱한 아이들을 버려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이씨가 등대의 집을 설립한 것은 1988년 12월 29일. 남편이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 뒤 9년 만의 일이었다. 어린 시절 그녀의 가정형편은 어려웠다. 그 고통을 극복하게 해 준 것은 신앙의 힘이었다. 모태 신앙인인 그녀는 어려울 때마다 나중에 크면 반드시 불우 이웃을 돕겠다는 서원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결혼 후 남편과 액세서리 공장을 운영하면서도 불우 이웃에게 물질적인 후원을 하는 정도에 그쳤다. 기도를 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뚜렷한 방향이 잡히지 않았다.

하나님은 큰딸 정은주(42·등대의 집 사무국장)씨를 통해 올곧은 길을 제시하셨다. 87년 겨울 어느 날 시각장애인 시설 봉사활동을 다녀온 딸이 이씨의 손을 잡으며 “엄마, 우리가 그동안 입으로만 이웃을 사랑한 게 아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던 것. 인천 혜광학교에서 한 시각장애인 여학생이 봉사활동 나온 딸의 꽁꽁 언 손을 자신의 볼에 대며 녹여주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모녀는 이후 시각장애 학교, 정신지체 시설 등에서 봉사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예수 사랑은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그러길 몇 달, 모녀는 천안 구룡동에 등대의 집 둥지를 틀었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집안에 뜻하지 않은 우환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시각장애 목회자였던 사위가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먼저 갔다는 것이다. 이씨는 험난한 세월도 이겨올 수 있었지만 딸만 바라보면 눈물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시각장애인과 결혼하겠다는 딸을 못마땅하게 여긴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20여년을 함께 동고동락하던 사위가 하늘나라로 가던 날, 딸과 저는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뒷바라지한 딸의 고생도 고생이지만 시각장애 사위에게 더 잘 대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이었지요. 사위가 이제 저 좋은 천국에서 우리 모녀를 다정스레 바라보고 있겠죠?(모녀의 눈에 잠시 눈물이 맺혔다).”

이씨네 가훈은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요한복음 12장 24절 말씀이다. 소외 이웃을 위해 나눔의 삶을 살자는 뜻에서다.

은은하고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연꽃처럼 예수님의 선한 향기를 내뿜길 원하는 이씨 모녀. 모녀는 장애인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기도하고 있다.

천안=글 유영대 기자·사진 홍해인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