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 서신] 준영·재형·경호가 만나게 될 세상

입력 2011-07-13 18:06


며칠째 내리는 장맛비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는 칠월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저는 사회복지사 수업 1학기를 무사히 끝내고 지금은 방학이라 잠시 쉬고 있습니다.

미아리 집장촌 사람들과 어울려 즐겁게 꾸리고 있는 약국 생활이 주는 크나큰 활력소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혼자 지내는 아버님을 챙기는 일 또한 즐거움으로 섬기고 있는 제 작은 사역이지요.

어찌 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역이라는 것이 크게 드러나 보이는 그런 거창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됩니다.

친한 벗이 만든 야생오디 농축액을 약국에서 팔게 되었습니다. 오디 액을 판다는 홍보문구를 써 붙여서 주민들에게 알리고 있지요. 시원한 생수에 오디 액을 희석해 놓은 뒤 더위에 지쳐 약국을 찾는 주민들에게 한 잔씩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무더위에 지친 주민들께 한 잔씩 드려 보랏빛 열매의 상큼함을 함께 나누고 있답니다.

술 취한 남자 한분이 약국으로 들어오시면서 오디 한잔 주면 안 되느냐면서 말끝을 흐렸습니다. 저는 짜증 어린 마음으로 오디 액을 따르다가 제 마음속에서 작은 흔들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온갖 악취가 풀풀 나고 겉모습이 추레한 사람에게 위로의 마음길이 선뜻 열리지 않는 저의 못된 이기심이 솟아남을 알아버린 것이지요. 삶의 신산함이 온 어깨를 누르고 있는 그분에게 더 큰 위로가 필요할 지도 모를 텐데….

오디 액을 맛있게 드신 그분은 정말 맛있게 먹었노라고 하면서 크게 인사를 꾸벅 하고 나갔습니다. 많이 미안하였고 감사했습니다. 아직도 제 마음속에 많이 남아 있는 세상의 정욕이 저를 흔들어 훈련시킨 귀한 순간이었습니다. 이런저런 모양새로 저를 훈련시키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며칠 전 준영이네 가족에게 아주 멋진 스마트 텔레비전이 선물로 들어왔습니다.

준영이랑 재형이랑 끙끙거리면서 케이블선 연결을 하려고 했으나 잘 안 되어 결국 기사아저씨의 도움을 받았지요. 드라마에 나오는 탤런트들의 땀구멍이 다 보인다고 준영이가 신나서 이야기를 하였지요. 경호나 재형이도 텔레비전에 얼굴을 묻고 열심히 보고 있다고, 정말 신나고 고마운 일이라고 아이들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간 준영이네에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준영이 엄마가 몸에 이상이 생겨 보름 동안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극심한 피로로 간에 혈전이 생겨 이를 치료하고 전반적인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강력한 권유로 그리한 것이지요. 퇴원한 뒤에도 준영이 엄마의 몸이 썩 좋아지는 기미가 없어 많이 걱정됩니다.

재형이는 형이 사는 고시원으로 들어가 형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준영이 엄마의 입원소식을 들은 재형이 형이 그리하였습니다. 준영이 엄마는 퇴원하면 다시 오라고 하였으나 제가 보기에 무리일 것 같아 당분간 그리 지내기로 했습니다.

경호는 사이가 소원했던 어머니와 화해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도 매주 금요일에는 함께 모여 맛난 음식도 먹고 재미있는 게임도 하고 함께 뒹굴면서 오순도순 잘 지내고 있답니다. 공고 3학년인 아이들은 이제 곧 실습을 나가게 됩니다.

경호는 자동차 관련 회사로 실습을 가고 싶어 하는데 그리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나게 될 세상을 아이들이 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립니다.

힘든 세상살이에 많이 지쳐 있는 준영이 엄마가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 가운데 힘을 얻고 당당함을 키워 견뎌낼 수 있도록 그녀의 마음 길을 잡아 열어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준영이, 재형이, 경호. 이제 이 세 아이들이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여리기만 한 아이들 마음을 흔들고 오염시킬 세상 가운데 아이들이 살아가야 한다면 버텨낼 수 있는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인 되시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