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목소리 소녀, 재즈가수 되다… 2집 내고 7월 27일 무대 남예지씨

입력 2011-07-13 18:00


그의 노랫소리는 젖은 날갯짓 같다. 묵직하고 나른한데 우울하지 않다. 나비 날개가 봄비에 젖은 채 퍼덕인다면 그럴 거다. 짙은 음색은 손질된 느낌이다. 두 번째 음반. 남예지(30)는 지난 4월 돌아왔다. 1집 이후 7년 만이다. 오는 27일 대구에서 공연한다. 12일 서울 등촌동 연습실에서 만났다.

7년

“열심히 공연 준비 중이에요. 연주자들이랑 예행연습하면서 편곡도 하고요. 1집 노래랑 스탠더드 재즈도 해요.” 남예지는 재즈를 축으로 여러 장르를 시도한다. 새 음반은 재즈에 몸을 묶고 사방으로 도약하는 인상을 준다. 그는 재즈에 갇히길 거부한다. 고립된 장르는 대중과 소통할 수 없어서다.

2집 표제는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 미지의 세계를 뜻한다. 옛날 유럽에서 가 본 적 없는 나라를 일컫는 말이었다. 남예지는 음악의 테라 인코그니타로 대중을 초대한다는 뜻으로 썼다.

1집 ‘Am I Blue?’(나 우울하니)는 2004년 발매됐다. 7년이 흘렀다. 그 사이 남의 음반에만 가끔 참여했다. “한동안 음반이 꼭 필요하단 생각이 안 들었어요. 재즈 클럽에서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거든요. 만족할 만한 실력도 아니었고요.” 2009년 홍대 재즈 클럽에서 황인규(32)를 만났다. 캐나다에서 막 귀국한 베이스 연주자였다. ‘남예지 밴드’를 결성했다. 황인규는 2집을 제안했다.

“실력은 만족스럽지 못해도 지금이어서 좋은 모습이 있더라고요. 1집을 들어보면 제가 잃어버린 장점들이 들려요. 음반은 사라질지 모르는 지금의 장점을 기록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1집 활동을 끝내고 가요계 진출을 모색했다. 기획사를 알아봤다. 재즈 가수라는 꼬리표가 안 떨어졌다. 얼굴을 고치라는 둥 독한 말도 들었다. “다 잊었어요. 그 시기는 자연스럽게 지나갔어요. 견디거나 이겨낸 건 아닌 듯해요. 노래 부르는 게 즐거웠기 때문일 거예요.”

모태 저음

남예지는 허스키하다. 저음으로 태어났다. 중·고등학생 때 ‘남장군’으로 불렸다. 목소리가 사내 같다고 친구들이 붙인 별명이었다. 음성은 컸다. 수업시간에 떠들면 가장 먼저 걸렸다. 집으로 걸려온 어머니 친구들의 전화를 종종 받았다. 그들은 “아들이냐”고 물었다. 목소리 하나로 성정체성이 무시되는 건 억울했다. “저 여자들이 하는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취미가 뜨개질이에요.”

2000년 중앙대 심리학과에 입학했다. 힙합 동아리에 들었다. 랩에 맞물려 등장하는 노래를 맡았다. 연습하며 목을 혹사했다. 옷장에 들어가 소리를 질렀다. 항아리 입구에 대고도 질렀다. “그러면서 허스키한 목소리가 굳어졌어요. 소리 내는 법을 모르고 그냥 지르기만 했던 것 같아요.”

성대 결절에 걸렸다. 소리가 안 나왔다. 어머니와 필담을 나눴다. ‘엄마, 오늘은 미역국 끓여 줘’ 하는 식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전화해도 놀랄까 봐 못 받았다. 밤엔 아예 안 받았다. “지금은 좀 나아졌어요. 편한 발성법을 찾아서 그런가 봐요.” 남예지가 1집을 냈을 때 친구는 어머니에게 들려줬다. 그의 어머니는 칭찬했다. “네 친구, 노래 잘한다. 군대는 언제 가니?”

남예지는 웃으며 말했다. “전 지금도 녹음한 제 목소리를 못 듣겠어요. 그래도 콤플렉스(열등감)는 공연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자랑스럽기도 하고요.”

노래방

어려서부터 가수가 꿈은 아니었다. 노래하기 좋아했을 뿐이다. 옛날 팝송과 가요를 즐겨 부르는 부모를 보고 자랐다. 아버지가 기타를 치면 어머니는 노래를 불렀다. 남예지가 재즈풍으로 편곡해 2집에 담은 배인숙의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는 어머니가 자주 부른 곡이었다. 중학생 때 교회 성가대로 활동했다. 주목받진 않았다. 플루트를 불기도 했다. 남예지 가족은 논현동 서울영동교회를 다닌다.

노래방만한 데가 없었다. 고3 땐 문제집을 들고 노래방에 갔다. 친구들이 학교와 독서실에서 자습할 때였다. 노래방에서는 한 문제를 풀어야 다음 곡을 부를 수 있다는 철칙을 세웠다. 주로 수학 문제를 풀었다. “노래할 땐 즐거운데 끝나면 후회해요. ‘공부해야 하는데…’하면서.” 남예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전날에도 노래방에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기는 대학 동아리 공연이 처음이었다. 무대에 서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욕심도 생겼다. 밴드 연주에 맞춰 노래하고 싶어졌다. 동아리에선 반주 CD만 활용했다. 연주자들과 합주할 수 있다는 말에 2001년 실용음악학원에 들어갔다. 학원을 다니면서도 가수가 될 생각은 없었다. 남예지는 그해 대중음악 전문 케이블 ‘엠넷’이 주최한 가요제에서 알앤비(R&B) 부문 대상을 탔다.

학원은 이듬해 수료했다. 우등생으로 뽑혔다. 오디션이 주선됐다. “다른 생각 없이 갔어요. 검사받는 기분으로 노래했는데 그 회사에서 ‘재즈 한번 해 보자’고 했어요.” 2년 뒤 남예지는 데뷔했다.

재즈

음반을 내자 친구들이 신기해했다. 실력보다 ‘연예인 됐다’가 관심사였다. “저도 자만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재즈 클럽에서 선생님(선배 연주자)들한테 엄청 혼났어요. 악보 작성이 익숙지 않았거든요. ‘공부 좀 하라’는 말 듣고 창피했어요.” 어깨 너머로 배우기 시작했다. 학교엔 2004년 가을 돌아왔다.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았다. 2006년 8월 졸업했다.

2008년부터 시간강사로 대학 출강 중이다. 노래를 가르친다. 학교는 대구예술대 수원여자대 예원예술대(전북 임실) 등 각지에 퍼져 있다. 처음엔 중압감이 심했다. 모든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모르는 부분을 인정하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전엔 제 자리가 아닌 것 같고 학생들에게 미안했는데. 지금은 즉답 못할 질문이 나오면 ‘다음 시간에 꼭 알려 주겠다’는 식으로 약속해요.”

재즈와 친해지는 방법은 뭘까. “요즘 나오는 걸그룹 노래 정말 어려운데 다 따라 부르잖아요. 그보다 쉬운 재즈가 많아요. ‘플라이 투 더 문’이나 ‘오버 더 레인보우’처럼 익숙한 곡을 여러 가수의 곡으로 들으면서 비교해보세요. ‘나가수’(나는 가수다) 못잖은 편곡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남예지는 분야를 넘나들고 싶어 한다. 뮤지컬 오디션을 몇 번 봤다. 노래는 문제가 안 됐다. 춤만 추면 심사위원들이 웃었다. “끼가 없는 건지. 무대에 서면 떨려서 토할 것 같아요.” 남예지는 두 딸 중 장녀다. 애교 많은 딸일까. 그는 정색했다. “아뇨. 생활에 애교 자체가 없어요.” 진심인 듯했다.

글 강창욱 기자·사진 서영희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