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위험한 대결

입력 2011-07-13 17:31


승부사들에게 자존심이란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때로는 피할 수 없는 승부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조서(조훈현·서봉수)시대’로 불렸던 1980년대 중반에 일본에서 돌아와 한국 바둑을 평정한 조훈현 9단에게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는 서봉수 9단이었다. 당시 동년배 기사로는 하찬석 9단, 김희중 9단, 후배로는 도전 5강(백성호, 장수영, 강훈, 조대현, 서능욱)이 있었지만 주변 평가는 물론 본인들 또한 조서의 벽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즈음 일본에서 기성·명인 두 개의 타이틀을 보유한 조치훈 9단이 신예 3강 야먀시로 히로시, 고바야시 사토루, 왕리청과 치수고치기를 펼쳤다. 승부는 호선으로 시작됐는데 조치훈 9단이 시원하게 4연승을 거둬 치수가 고쳐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한국에서 조훈현 9단과 도전 5강의 치수고치기를 추진했다. 치수는 호선이 아닌 정선. 처음에 도전 5강은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자신 있으면 이겨보라는 주변 여론에 밀려 그대로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이미 자존심은 상했고 승부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승부는 거침없이 밀려 2점, 이후 3점의 고비까지 갔다. 같은 프로로서 2점을 까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수치였다. 결과적으로 ‘위험 대결’은 정선으로 끝이 났다. 당시 파격적인 시도로 큰 관심을 모았지만 개개인의 기사들에게는 많은 상처가 된 사건이기도 했다. 이렇게 조심스럽고도 위험한 대결이 오늘 다시 시작된다.

‘위험 대결. 빅3를 넘어라!’는 슬로건으로 시작되는 이번 시합은 여자상위 랭킹 3명(박지은, 조혜연, 루이 9단)과 여자상비군 12명 선수 가운데 최근 치러진 리그에서 성적이 좋은 상위 랭커 3명이 대결을 펼치는 것이다. 네오위즈게임즈가 여자상비군을 후원해 지난 4월부터 맹훈련을 펼친 가운데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이민진 5단, 김윤영 3단과 최근 지지옥션배 여류 대 시니어 연승대항전에서 연승행진을 하고 있는 최정 초단이 선발됐다.

3대 3 대항전 형식이지만 한쪽이 연달아 두 판을 지게 되면 덤 3집반, 다시 두 판을 지면 정선으로 치수가 고쳐진다. 여기서 다시 두 판을 진다면 백 3집반, 다음은 2점이다. 치수가 고쳐진다는 것이 기사들에게 많은 부담이 되지만, 이번 시합을 통해 짜릿한 승부를 보여주고 그동안 저평가됐던 여자바둑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켜 보자는 취지로 힘든 결단을 내렸다.

14일부터 3주간 매주 목, 금, 토요일 오후 4시 30분부터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9판의 대국 중 5판 이상을 이기는 팀이 승리를 하게 된다. 위험한 대결인 만큼 이번 시합을 통해 숨겨져 있던 여자바둑의 재미를 느끼고, 치열한 승부를 펼치는 여자프로들이 더욱 더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많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