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정치판 “국익보다 당파”… 민주·공화 재정감축 담판 또 실패

입력 2011-07-12 18:48

미국 연방정부 재정적자 감축 협상이 11일(현지시간)에도 해결되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공화당 지도부가 이날 백악관에서 세 번째 담판을 시도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오히려 시각차만 계속 확인했을 뿐이다. 다음 달 2일까지 국가채무 상한액(14조3000억 달러)이 증액되지 않으면 채무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 사태가 올 수도 있지만, 워싱턴 정치의 고질적인 당파적 시각이 개입되면서 사실상 합의와 결렬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는 문제해결을 위해서라면 민주당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준비가 돼 있다”며 “다른 편도 같은 행동에 나설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해 양당이 조금씩 물러설 것을 촉구했다.

재정적자 감축 문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이미 내세운 명분과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기라는 요소 때문에 쉽게 합의점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한 달여 이상 기싸움을 벌여 왔던 정치권은 이달 초 사실상 큰 틀의 합의를 이끌어냈었다.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을 이끄는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지난 7일 ‘비용 절감과 세입 증액을 통해 향후 10년간 4조 달러를 절약’하는 쪽으로 합의안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안은 양당 내부에서 거부됐다. 특히 공화당 반발이 컸다. 이 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부유층 감세 혜택을 중단시킬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앞으로 절대 증세는 없다’고 공약해 놓은 상태다. 세금에 관한 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티파티’ 의원들이 강력 반발했고, 떠오르는 대선후보 미셸 바크만 의원은 아예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당내 대부분 의원이 반대하는 데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보수적 지지자들의 이탈을 우려해 베이너 의장이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정치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고 미 언론들은 분석했다. 그래서 베이너 의장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합의 파기를 통보했다.

민주당 일부에서도 반대했다. 민주당이 주장해 왔던 사회보장 프로그램 예산이 깎였고 진보진영의 지지표가 이탈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합의안이 파기되자 이번에는 2조 달러를 절약하는 방안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방안도 양당의 강경파 목소리에 흐지부지되고 있다.

정치권의 당파적 대립에 의회의 다른 현안 논의는 거의 중단 상태다. 한국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처리는 뒷전으로 밀려 있다. 성 김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 등 일부 인준청문회 일정은 잡지도 못하고 있다. 이미 5월 26일 인준청문회를 치른 게리 로크 주중 미국대사 지명자(현 상무장관)도 아직 인준을 받지 못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런 당파적 대립으로 국가적 현안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워싱턴 정치판에는 정치적 용기가 부족해 보인다”고 비꼬았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