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편법 대물림’ 차단…대기업 손본다

입력 2011-07-13 00:24


제조업체 사주 A씨는 B사를 설립한 뒤 본인 소유의 주식을 임원 등에게 명의신탁을 했으며 이 주식 중 일부를 자녀가 대주주인 회사에 수백억원 싼 값에 팔아 넘겼다. A씨는 명의신탁 주식 배당금 (약 240억원) 등으로 자금출처가 면제되는 일명 묻지마 채권 55억원을 구입, 매각한 뒤 다시 지인 명의로 주식을 취득하는 방법으로 총 2500억원을 탈루했다. 그는 국세청으로부터 증여세와 법인세 등 970억원을 추징당했다.

국세청이 대기업 경영권 편법승계 등 부당한 부의 대물림에 메스를 들이댔다. 정부의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제재에 발 맞춰 세정당국도 국내 대기업의 편법 행위에 대한 정면대응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국세청은 상반기 부당증여를 통해 편법적으로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대기업 사주와 차명재산을 보유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고액자산가 등 204명을 조사해 4595억원을 추징했다고 12일 밝혔다.

국세청이 밝힌 편법 대물림에는 허위 주주명부 작성, 자녀명의 페이퍼컴퍼니(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 투자, 비자금 차명운용, 기업자금으로 사주 2세 주식취득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다.

공인회계사 C씨는 2007∼2008년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50억원을 증여한 뒤 아들 명의의 페이퍼컴퍼니에 투자한 것처럼 송금했다. 아들은 아버지 C씨가 사망하자 페이퍼컴퍼니가 결손상태인 것처럼 장부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상속세를 탈루했다. 제조업체 사주 D씨는 190억원을 약 10년간 임직원 이름을 빌려 국공채, 펀드 등으로 차명운용한 뒤 30대 중반 아들에게 변칙상속하려다 적발됐다. 기계업체 사장 E씨는 매출을 누락하는 수법으로 돈을 빼돌려 자녀 3명에게 현금으로 40억원을 증여하기도 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번에 적발된 업체들은 매출액 1000억 이상으로 50∼100대 그룹 기업들이 다수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국세청은 이날 본청 대회의실에서 이현동 청장 주재로 전국 조사국장회의를 열고 ‘세금없는 부의 대물림 차단’ ‘대기업에 대한 성실신고 검증’ ‘역외탈세 근절의 중단없는 추진’ 등을 하반기 세무조사의 역점과제로 선정했다.

이번 회의를 통해 사실상 국세청이 대기업 손보기에 본격 나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세청 임환수 조사국장은 “수출의 70%를 담당하는 대기업이 국민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지만 이에 걸맞게 성실 납세신고 여부에 대해 제대로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오늘날 세계적 기업들은 세무관리목표를 ‘세금납부의 최소화’가 아닌 성실납세에 두고 있다”고 언급했다. 우리 기업이 글로벌 납세기준을 따르지 못하고 있음을 꼬집은 것이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