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이희옥] 북·중 우호협력조약 50년
입력 2011-07-12 18:04
지난 5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9개월 만에 다시 중국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금년이 북·중 우호협력조약이 체결된 지 50년이 되는 해라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7월 11일이 바로 그날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북한은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이 이끄는 대표단을 중국으로 보냈고, 중국도 장더장(張德江) 국무원 부총리가 이끄는 대표단을 북한에 보냈다. 다양하고 풍성한 문화행사가 개최되었다.
북·중 우호협력조약 기념일을 주목하는 이유는 조약의 제2조, 즉 ‘어느 한쪽이 공격을 받아 전쟁 상태로 바뀌는 즉시 상대방에게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이른바 자동개입 조항 때문이다. 그동안 이 조항을 두고 변화된 국제질서를 반영하여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또 현실적으로 사문화되었다는 해석도 등장했다.
북한 안고 가겠다는 중국
그러나 중국은 의표를 찌르고 이 조약이 1981년, 2001년, 2021년 등 20년마다 자동으로 연장되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확인해 주었다. 2021년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년을 맞는 해이고 ‘전면적 소강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는 해이다. 이때까지 중국은 북한을 안고 가겠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중국의 의도는 명백하다. 무엇보다 미·중 간 중첩이 확대되는 한반도에서 확실한 교두보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은 북한에 대해 압박과 대화정책을 동시에 구사했다. 북 핵실험 당시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유엔의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한편 6자회담을 통한 해결을 북한에 지속적으로 권고했다.
그러나 북한은 변화는커녕 중국에 대한 불신을 내면화했다. 중국이 북한과 멀어지고자 할 때마다 북한은 미국에 손을 내밀었다. 따라서 중국이 학습한 것은 미국이 먼저 움직이지 않는 한 절대로 먼저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고 북핵 문제가 비확산, 거래,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지정학적 전략 속에서 섬세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읽었다.
그 결과 중국은 북한에 대한 인식과 정책을 변경했고 북핵 문제와 북한 문제도 분리해 접근했다. 국제사회의 기대와는 달리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대한 중국의 정치적 침묵도 바로 이러한 환경이 만든 것이었다. 여기에 중국은 ‘동북아판 G2 체제’에서 북한카드를 극대화하기 위해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극대화했다.
김 위원장이 방중을 마친 직후인 6월 8일과 9일에 중국과 북한의 경협 최고사령탑이 참석한 가운데 압록강변의 황금평과 나선특구 합작개발 착공식이 열렸다. 이것은 중국판 개성공단으로 북·중 경협이 새로운 궤도에 올라섰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물론 단둥의 기업들이나 홍콩의 외자기업들은 북한의 좀 더 과감한 개방정책을 기다리면서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북·중 관계는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의 교착 속에서 전방위적으로 발전했으며 이러한 추세는 역진이 불가능하다.
中의 對北 관여정책 편승해야
따라서 북·중 관계를 보는 대담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북한은 언제까지나 남한을 버리고 중국과 미국에 접근할 수는 없으며, 중국과의 관계발전이 종속성을 심화시킨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비록 북·러 정상회담이 불발되었으나 중·러 관계가 삐걱대는 틈을 이용해 새로운 북·러 관계를 모색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요컨대 남북 관계 발전 없는 북·중 관계 발전은 미래 한국에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북한의 변화를 기다리면서 ‘전략적 인내’를 유지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는 점이다. 현실주의자들은 자신이 희망하는 현실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 힘을 구사하는 것이 현실적 선택이 아니라면 지금으로서는 중국의 대북한 관여정책에 올라타는 수밖에 없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