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우. 관리집사 하루 2題
입력 2011-07-12 17:01
[미션라이프]장마철이 아니라 ‘우기’라 부를 만큼 연일 장대비다. 여기에 게릴라성 폭우까지 쏟아질 때면 머릿속에 집과 가족 걱정이 스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크리스천 중에 “우리 교회는 무사한가?” 떠올리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있다는 의미일거다. 요즘 특히 동분서주할 교회 관리집사들, 그중에서도 오래 된 건물을 20여 년간 돌봐 온 두 집사를 만나보았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는 영성을 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기 좀 보세요.”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박종화 목사) 이국한(59) 집사는 벽돌 건물 위쪽을 가리켰다. 빗물을 잔뜩 머금은 벽돌 위로 담쟁이 넝쿨이 생명의 기운을 떨치며 기어가고 있다. 가리키는 것은 그 틈에 무성하게 솟은 잡풀이다. “실은 저게 나중에 아름드리도 될 수 있는 나무예요. 건물 벽에 뿌리를 내려 구멍을 내지요.”
이 집사는 내내 고개를 뒤로 완전히 젖힌 자세다. 비가 올 때면 늘 그래야 한다. 예배당에 들어서자 성가대석 여기저기 양동이가 놓여 있다. 외관과 달리 시멘트 느낌 그대로인 내벽을 따라 빗물이 몇 줄기 흐른다. “어, 저기도 떨어지네.” 이 집사는 유리병을 가져와 받쳤다.
행여 교회 이미지가 나빠질까봐선지 “낡아서 비가 새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누차 강조한다. 교회에 대한 소속감과 자부심, 이 건물에 대한 사랑이 서로 상통하는 것은 교인들이나 이 집사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관리집사 입장에선 “좋지 않은” 건물인 것도 사실이다.
벽돌 사이마다 방수처리를 해도 누수를 완전히 잡을 수 없다. 특히 요즘처럼 비가 이어지면 벽돌들이 머금은 물을 한꺼번에 쏟아내 어디서 샐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변전실 등 이 집사만이 드나드는 지하 공간들에는 빗물을 막아 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나마 4~5년 전 배수로 공사를 한 뒤로 예배당 아래층 식당(친교실)에서 물 퍼내는 일은 없어졌다. 이제는 성인이 된 남매까지 네 식구가 10년 넘게 비 올 때마다 밤새 물을 퍼내던 것도 지나간 추억이다.
그밖에도 폭설이 내린 주일 새벽, 끝도 없이 낙엽이 쌓이는 가을날을 지나다 보니 20여년이 지났다. “교인들에 제 존재를 의식 못하는 게 일을 잘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하지만 아쉬움을 느낄 때도 있다. “누구든지 저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그 진면목이 드러나죠. 겸손이란 참 어려운 덕목이더라고요.”
그럼에도 그는 ‘허물을 덮는 자’ ‘가장 낮은 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 애쓴다. “그래야 모두 편하니까요. 어차피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잖아요. 하나님은 제 일을 칭찬하고 축복하신다고 믿어요.”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12일 오전, 서울 신림동 성림교회(진용훈 목사) 김영철(59) 관리집사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본당 뒤편 천장에서 물이 새는 것을 확인하고 양동이를 받친 뒤 바로 옆 찬양대 연습실로 가 물이 스민 벽면에 수건을 댄다. 빗발을 온 몸으로 맞서며 교회 지붕에 올라 빗물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를 살피지만 여의치 않은 듯 고개를 젓는다.
“오래되다 보니 고장 난 곳이 많아요.” 빗물을 닦아내며 말하는 김 집사의 표정은 마치 친한 친구가 노쇠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듯 했다.
40년 된 건물을 22년간 관리해오면서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2001년 장마 때 일이다. “새벽에 전화가 왔는데 전도사님이 사무실 바닥에 물이 차고 있다는 거였어요. 일어나 보니 집에도 물이 차고 있었지만 우선 교회로 뛰어갔지요.” 당직 전도사 둘이 사무실에 갇혀 있었다. 창문을 깨고 겨우 그들을 구출했다.
그때 교회가 신림동 수재민들을 받아 숙식을 제공한 일을 김 집사는 “무척 보람 있었다”고 기억했다. 교회 살림에 밝다보니 수재민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들을 발 빠르게 찾아줄 수 있었다는 것.
김 집사는 본래 교회에서 ‘만능 재주꾼’으로 통한다. 고장 난 물건 수리부터 급하게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일까지 척척이기 때문이다. 교회 차량 운전까지 맡아 한다. 철공소, 목공소, 염색공장과 택시기사까지 두루 거친 경력을 전하며 “하나님께서 저를 이 일에 쓰시려고 훈련시키셨나보다”라고 했다.
그는 관리집사 일을 잘 감당하는 비결을 ‘바보 되기’라고 했다. “물론 일하다 보면 얼굴 붉힐 일도 있지요. 그때마다 나도 저 사람도 모두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냐고 생각해요.”
어느새 똑똑 떨어진 빗물로 양동이가 가득 차 있다. 양동이를 들어 옮기며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이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제 친구예요. 이렇게 좋은 친구를 섬길 수 있다니, 저처럼 복 받은 사람이 또 있겠습니까?” 이사야 기자 isay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