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깨야 기록 깬다… 女 장대높이뛰기 최윤희·100m 허들 정혜림 선수
입력 2011-07-12 17:50
달리고, 넘고, 던지는 육상은 모든 스포츠의 기초 종목이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육상은 가장 많은 메달이 걸려있는 종목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다음달 말 대구에서 세계 3대 스포츠 중 하나인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다. 그러나 한국에서 육상은 비인기 종목이다. 국제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뜨거운 뙤약볕 속에서 선수들은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한다. 육상이야 말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진정한 스포츠 종목이기 때문이다.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2011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 일본 고베에서 두 명의 선수를 만나봤다.
#최윤희 “나와 싸워 이긴다는 희열, 육상에 관심을…”
한국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간판스타인 ‘미녀새’ 최윤희(25·SH공사)는 지난 9일 일본 고베 유니버시아드 기념 경기장에서 열린 2011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에서 4m의 저조한 기록으로 3위에 그쳤다. 최윤희는 이번 대회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하지만 기대 이하의 경기를 선보이며 이번 대회에서 한국에 첫 메달을 안겨줬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최윤희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장대높이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장대높이뛰기라는 생소한 종목을 시작한 계기는 당시 다니던 학교에서 이를 권했던 것도 있었지만 “이렇게 높은 곳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스릴을 느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그리고 피나는 노력 끝에 한국을 대표하는 여자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됐다. 특히 지난해부터 기초 체력을 강화하고 기계체조 훈련을 통해 자세를 교정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며 지난달에는 4m40을 넘으며 26개월 만에 한국 기록을 새로 쓰기도 했다. 고베에서 제 기량을 못 보여준 것에 대해선 “경기 전날 갑자기 몸이 아파 컨디션이 뚝 떨어졌다”면서 “다리에 힘이 빠져 평소보다 약한 장대를 썼고 도움닫기 할 때도 속도를 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최윤희는 자신감이 있었다.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컨디션 조절을 잘만 하면 무난히 결선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부문 최고 기록은 러시아의 엘레나 이신바예바가 가지고 있는 5m06이다. 최윤희에 비해 66㎝나 높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최윤희가 메달을 딸 가능성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하지만 “나와의 싸움에서 꼭 승리해 최소한 한국신기록은 깨고, 결선에 진출해 보이겠다”고 말했다.
최윤희는 끝으로 육상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당부했다. 실제 이번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리는 고베 유니버시아드 기념 경기장에는 경기가 열린 나흘 동안 매일 5000명 이상의 관중이 와서 경기를 관람했다. 경기장에 들어가기 위해 300m 이상 줄을 서서 들어가는 모습도 매일 반복될 정도였다. 최윤희는 “일본에서 이렇게 육상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게 너무 부럽다”면서 “부디 한국에서도 육상 경기가 열리면 직접 오셔서 지켜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육상에 대한 새로운 붐이 일어날 수 있도록 나도 더 많이 노력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도록 하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여자 육상의 간판이 된 기대주 정혜림
대회 마지막 날인 10일 오후까지 한국 육상대표팀은 침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까지 대표팀이 고베에서 거둔 성적은 전날 최윤희가 장대높이뛰기에서 딴 동메달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후 4시 응원을 나온 대표팀 코치진과 선수들 사이에서 “와” 하는 소리가 났다. 한국 육상 여자 100m 허들의 기대주 정혜림(24·구미시청)이 결선에서 은메달을 땄기 때문이었다. 제일 가장자리인 9번 레인에서 뛴 정혜림은 초반부터 무서운 스피드로 전력 질주해 이번 대회에서 한국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
특히 정혜림은 13초11만에 결승선을 통과해 세계선수권대회 B기준기록(13초15)을 넘겼다. 이로써 정혜림은 우리나라 여자 허들에서 자기 실력으로 사상 첫 세계선수권대회 본선에 진출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또 내년 런던 올림픽 본선 출전 자격도 자동으로 얻게 됐다. 물론 이번 대구 대회 때는 개최국 자격으로 각 종목당 한 명씩 출전시킬 수 있는 특혜가 부여돼 있지만 정혜림은 국제 기준 기록을 통과해 스스로 자격을 얻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높다. 개최국을 제외한 각 나라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종목별로 A기준기록을 통과한 선수를 3명까지 출전시킬 수 있고, B기준기록 통과자는 1명만 내보낼 수 있다.
레이스를 마치고 경기장을 나서는 정혜림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곧바로 부산에 계시는 어머니한테 기쁨의 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너무 자랑스럽다. 그동안 고생한 게 헛된 게 아니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더라고 정혜림은 전했다.
대표팀 문봉기 총감독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문 감독은 “워낙 스피드가 좋은 선수”라며 “허들 종목에서 선수들이 대체적으로 28살 정도 때 꽃을 피우는데 정혜림은 아직 어린 선수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추켜세웠다. 문 감독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피드에 부드러운 허들링(허들 넘는 기술)을 더욱 연마한다면 내년 런던 올림픽에서부터 메달권 진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혜림은 부산 토성초교 4학년 때부터 육상에 입문했다. 그런데 어린 시절 여자 선수가 육상, 그것도 낯선 허들을 한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은 무척 신기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정혜림은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허들을 하는 경우가 많이 없기 때문에 그냥 폴짝폴짝 허들을 뛰어넘는 것 자체를 신기하게 보더라”고 말했다. 그만큼 비인기 종목이기 때문에 다른 종목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정혜림은 “여자 허들 선수가 우리나라에 20명이 채 안 된다”고 토로했다. 정혜림은 어린 나이지만 무척 겸손한 모습이었다.
정혜림은 “아직 큰 욕심이 없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대구 대회나 올림픽에서 메달보다는 기량이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고베=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