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는 상설재판소 ICC… 자국민 소추 우려 美·中·러는 비준 거부

입력 2011-07-12 17:55


인류가 저질러온 학살의 장구한 역사와 극악함에 비해 국제사법기구의 역사는 짧고 영향력은 초라하다. 전범 재판을 다루는 상설 재판소는 2002년 로마규정에 의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립된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유일하다. ICC는 유일한 독립 재판소이기도 하다.

현재 설치돼 있는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1992년 설립),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1994년), 시에라리온 특별재판소(SCSL·2002년), 크메르루주 특별재판소(ECCC·2006년), 레바논 특별재판소(STL·2008년) 등은 모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설립된 유엔 산하기관이다.

강제력이 없기는 모두 마찬가지다. 유일한 독립 전범재판소인 ICC조차 ‘종이호랑이’라는 오명에 시달리고 있다.

ICC는 집단학살과 반인륜 범죄, 전쟁 범죄, 침략 범죄 등 네 가지 범죄가 일어난 국가에서 재판을 거부하거나, 재판 능력이 없을 때 국가 관할권을 넘어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다. 범죄행위가 로마규정에 비준한 국가에서 일어날 경우, 범죄자가 해당 국가 국민이 아니어도 처벌할 수 있다. 또 ICC 체포영장은 공소시효가 없다.

ICC 설립이 2차대전 이후 가장 의미있는 국제법상의 진전으로 평가되긴 하지만, 그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로마조약을 비준한 국가에 대해서만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현재 비준국은 총 116개국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은 자국민 소추에 대한 우려로 비준을 거부하고 있다.

ICC가 현재 기소·재판 중인 사건이 모두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다는 점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서방 선진국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또 ICC 자체는 집행력이 없어 관련 국가들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이 때문에 범죄 혐의자들에 대한 체포 영장 집행이 오랜 기간 미집행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범죄를 저지르면 끝까지 처벌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라도 ICC에 더 많은 힘을 실어줘야 한다”면서 강대국의 ICC 가입을 독려하고 있다.

양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