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제2 그리스’ 위기… 금융시장서 국채 투매사태, EU 수뇌부 긴급회동 소집

입력 2011-07-11 21:26

이탈리아 국가 부채가 유로존에 새로운 위협으로 부상했다. 경제 규모가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이탈리아마저 채무 위기에 빠지면 유럽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이 나라 재정의 불안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초래한 측면이 강하다.

◇유럽 수뇌부 긴급 회동=유럽연합(EU)은 11일 오전(현지시간) 이탈리아 상황을 논의하기 위한 긴급 회동을 소집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긴급 회동은 지난 8일 이탈리아 금융시장이 심상치 않게 움직인 데 따른 것이다. 이탈리아 국채는 이날 투자자들이 투매에 나서면서 금리가 연 5.28%까지 치솟았다. 유럽의 국채금리 기준인 독일 국채와의 금리 차이(스프레드)가 약 2.45% 포인트까지 벌어져 유로 도입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채권 금리 상승은 채권의 가치가 낮아졌음을 의미하고, 더 나아가 해당 국가의 채무 이행 능력이 약해졌음을 뜻한다.

밀라노 증시도 이날 3.5%나 급락했다. 특히 이탈리아 최대은행인 유니크레디트의 주가가 가격제한폭까지 추락했다. 15일로 예정된 유럽은행 스트레스테스트 결과 발표에서 부정적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국가 채무는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20% 규모로 그리스에 이어 유로존에서 두 번째로 심각하다. 뉴욕타임스(NYT)는 “이탈리아 경제는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를 합친 것의 두 배 이상이어서 투자자들의 판단 여하에 따라 유럽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베를루스코니가 위기 키워=위기를 키운 것은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줄리오 트레몬티 재무장관의 갈등이다. 트레몬티 재무장관은 재정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긴축 프로그램 도입을 추진해 왔다. 이탈리아가 상대적으로 높은 채무 비율에도 재정 위기에 빠지지 않은 이유는 이런 노력 때문이었다.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이 소유한 기업에 특혜를 주는 조항을 이 긴축 프로그램 관련 법안에 포함시키길 원하고 있다. 트레몬티는 이에 반대 입장이다. 기업에 세금을 깎아주자는 베를루스코니의 제안도 트레몬티가 거부했다.

둘 사이 갈등에 따른 트레몬티의 사퇴설도 시장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NYT는 “베를루스코니가 불확실한 환경을 지속적으로 조성하고 트레몬티가 정치적 희생양이 될 경우 이탈리아에서 제2의 그리스 사태가 시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레몬티는 사퇴설을 일축했다.

베를루스코니 측은 8일 채권 투매와 주가 급락 사태를 투기꾼 탓으로 돌렸다. 이탈리아 금융당국은 단기투자자가 기업 자산의 0.2% 이상을 취득할 경우 투자 재산을 공개하는 조치를 10일부터 실시하기로 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주변국들은 불안 확산을 차단하려는 모습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탈리아 정부가 긴축예산을 승인해 시장에 강한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고, 그렇게 할 것으로 강하게 믿는다”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