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춤·노래 더해진 김홍도 그림을 만나다… 가무악극 ‘화선, 김홍도’
입력 2011-07-11 17:59
송나라 문장가 구양수(1007∼1072)는 ‘추성부(秋聲賦)’에서 가을 소리를 들은 순간을 읊었다.
“처음에는 바스락 낙엽지고 쓸쓸히 바람이 부는 소리더니…(중략) 쨍그렁 쨍그렁 쇠붙이가 모두 울리는 것 같고… 동자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 나가 보아라.’ 동자 말하기를, ‘달과 별이 밝게 빛나며 하늘에는 은하수가 있으며, 사방에는 사람 소리가 없으니 그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나는 것입니다.’”
여백 가득한 짧은 글로 가을과 인생과 풍경을 모두 그려냈다. 김홍도(1745∼?)는 말년에 구양수의 이 글을 모티브로 ‘추성부도(秋聲賦圖)’를 그렸다. 역시 일생에 영화와 좌절을 모두 겪은 예술가의 심정을 헤아려보게 하는 걸작이다. 그리고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추성부도’를 모티브로 가무악극 ‘화선, 김홍도’를 창조했다. ‘추성부도’는 ‘화선, 김홍도’의 모티브이자 복선이며 주제다.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는 풍속화가를 다루면서 풍속화 아닌 ‘추성부도’를 전면에 세운 의도에 관객은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중심이 되는 것은 김홍도의 그림이지 김홍도의 삶이 아니다. 손쉽게 줄거리를 따라갈 마음의 준비 정도만 하고 왔던 관객들이 당황하게 되는 것은 그 지점. ‘씨름’ ‘대장간’ ‘나룻배’ 등 김홍도의 대표작들이 무대 위에 펼쳐지는 동안, 눈에 가득 보이는 것은 춤과 노래와 그림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잠시 접는 게 좋다.
기본적으로는 조선시대 후기 어디쯤 살고 있을 김동지(박철호 분)와 손수재(성기윤 분)가 ‘추성부도’ 속에 들어가게 된다는 줄거리다. 손수재는 그림을 좋아하는 선비고, 그 친구 김동지는 그림수집가다. 둘은 그림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필사적으로 애쓰지만, 만나는 것은 하나같이 비현실적으로 웃고 있는 김홍도의 그림 속 사람들 뿐이다. 둘은 스치듯이 지나갔던 ‘추성부도’ 속 동자가 다름 아닌 김홍도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손 감독은 ‘추성부도’에 실현된 여백의 미학과, 알 듯 모를 듯한 꿈과 현실의 희미한 경계를 무대 위에 실현하기 위해 애썼다. 그림 속을 걸어 다니는 인물들이라든지 그림 속에서 사람이 튀어나오는 무대 효과 등은 관객들의 눈을 붙잡는데 성공했다. 손 감독은 “‘추성부도’를 매개로 김홍도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고 말했다.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16일까지 공연된다. 진품은 아니나, 공연장 밖으로 나오면 김홍도의 작품들도 전시되고 있다. 박철호 성기윤 민은경 류창우 왕기석 등이 출연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