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상온] 병영 악습 타파, 시대 변화 인식부터
입력 2011-07-11 17:39
먼저 전제부터 하자. 기본적으로 군대와 민주주의는 양립하기 어렵다. 억압적이고 불합리한 관행이 판치는 병영 문화 개선을 위해서는 ‘군내 민주주의’가 필요하다지만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군대란 있을 수 없다. 왜 그런가? 불안하긴 해도 평화가 지속됨에 따라 곧잘 잊어버리는 사실이지만 군대는 전쟁을 전제로 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전투 시 죽을 게 뻔한, 일반적인 경우라면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명령을 일방적으로 내리고 따라야 하는 게 군대다. 그런 불합리한 명령을 왜 강제로 수행해야 하느냐고 반발할 수도 없고, 명령을 누가 이행해야 하느냐를 놓고 구성원들이 다수결로 결정할 수도 없다. 이때 군 지휘관은 병사들의 생사여탈권을 지닌 절대군주다.
그러나 아무리 이 전제가 옳다 한들 전시와 평시를 막론하고 병영에서 선임이나 고참들이 제왕처럼 군림하면서 구타 및 가혹행위를 일삼는다거나 동료들 사이에 집단따돌림을 하는 것은 결코 그냥 둘 수 없다. 그것은 민주·반민주로 따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고질적인 악습·폐습의 문제다.
병력 위주에서 첨단 무기로
상습적인 구타와 얼차려, 욕설 및 모욕 등 물리·언어적 가혹행위, 이른바 고문관으로 불리는 병사를 대상으로 한 집단따돌림은 불행하게도 우리 군에 면면히 이어져온 ‘전통’이다. 구일본군의 잔재라는 설도 있고, 영화 ‘풀 메탈 자켓(Full Metal Jacket)’이나 ‘어 퓨 굿 멘(A Few Good Men)’에서 보듯 혹독한 군기잡기로 악명 높은 미 해병대에서 배웠다는 설도 있지만 우리 군의 ’악성 유전자‘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는 ‘군기 확립’ ‘정신전력 강화’라는 미명 아래 조장되거나 적어도 묵인됐다. 그 결과 툭하면 각종 총기 사건과 자살이라는 병증으로 표면화됐다. 그중에서도 많은 인명피해를 낸 대표적인 사례가 2005년의 경기도 연천 GOP 총기 난사사건과 지난 4일 강화도 해안소초 총기 발사사건이다. 연천 사건 이후 병영 문화를 개선한다고 온통 수선을 피웠건만 똑같은 질환이 6년 만에 재발한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강화도 사건이 일어나고 난 뒤 해병대를 포함해 전군이 ‘병영 악습과의 전쟁’을 선포하다시피 하고 각종 대책들을 제시하고 있음에도 쉽사리 믿음이 가지 않는다. 한동안 떠들썩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잠잠해지는 게 아닌가 해서다.
특히 실효성보다는 ‘대책을 위한 대책’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들도 있어 떨떠름하기까지 하다. 일례로 해병대가 긴급히 내놓은 ‘가혹행위자 3진 아웃제’만 해도 그렇다. “그렇다면 두 번까지는 가혹행위를 허용한단 말이냐” “두 번 가혹행위가 반복되는 동안 또 어느 병사가 목을 매거나 방아쇠를 당기면 어떡할 거냐”는 질책이 나온다.
그런 만큼 이제는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악습을 방관해온 군 간부들의 인식변화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시대가, 젊은이들이 달라졌음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타율에서 자율지향적으로
첨단 무기 없이 오로지 병력으로 싸우던 과거에 군 간부들은 전투력 발휘에 병사의 근성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이는 구타와 얼차려 등 혹독한 시련을 거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또 사회적 분위기상 타율에 익숙해 있던 병사들도 대체로 이를 견뎌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병력보다는 첨단 무기를 중시하는 시대가 됐고 구타 같은 부당한 처우는 견디지 못하는, 자율을 지향하는 젊은이들이 대세다.
군 간부들은 치열한 훈련과는 별개로 가혹행위를 통한 ‘단련’은 과거의 유물임을 인식하고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 이와 함께 국방부는 지난 정부에서 입법예고까지 됐으나 유야무야된 군인복무기본법을 다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구타 가혹행위 등 사적 제재를 일절 금지하고 사병 사이에 개인적 명령과 지시, 간섭을 할 수 없도록 한 이 법은 병영 악습 타파의 구체적인 지침이 될 수 있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