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 孫 ‘정체성’ 논란까지 비약… 야권통합 최대 걸림돌

입력 2011-07-12 04:50


“원칙 없는 포용정책은 ‘종북진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지난 1일 발언으로 ‘종북’이 야권의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야권통합이 중대 현안인 상황에서 제1야당 대표가 공개석상에서 꺼낸 종북 이슈가 내년 총선과 대선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종북’이 뭐기에=종북(從北)은 주로 보수진영이 진보진영의 대북관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아울러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공격할 때 꺼내들곤 하는 파괴력 있는 용어다. 사전적으로는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을 일컫는다. 친북(親北), 연북(連北)보다 강한 표현으로 199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이 표현이 널리 알려진 건 2001년 사회당 원용수 대표가 쓰면서부터다. 원 대표는 당시 민주노동당 측이 합당을 제안하자 “민노당 내에 북한 조선노동당 추종세력이 있기 때문에 합당할 수 없다”며 종북 세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를 계기로 사회당과 민노당은 조선노동당에 대한 입장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2006년 ‘일심회 간첩단 사건’으로 진보진영 내에서 또 한번 종북주의 논쟁이 일었다. 민노당 전 중앙위원이 북한에 가 충성서약을 했으며, 현직 사무부총장도 관련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사건이었다. 이후 민노당 내에서 심상정·노회찬 전 의원 등이 종북주의와의 단절을 주장하다가 다수파에 밀리면서 집단 탈당, 2008년 3월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야권통합에 어떤 영향 줄까=지난해 11월 25일 국회 본회의에 대북 규탄 결의안이 상정되자 민노당 의원들은 모두 기권했다.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던 일반적인 예상을 깬 조치였다. 당시 민노당은 북한의 3대 세습에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다. 한 관계자는 “종북 정당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며 “종북주의는 민노당에는 민감한 단어이자 잊고 싶은 상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손 대표의 종북 진보 발언에 대해서도 민노당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민노당은 손 대표 발언 직후 성명을 내고 강한 불쾌감을 표출했다. 민노당 핵심 인사는 “진보신당과 종북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겨우 수습해 가고 있는데 난데없는 곳에서 일이 터졌다”며 “이제는 민주당과 종북 논쟁을 해야 하는가”라고 답답해했다.

민노당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민노당을 고립시킨 채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등 다른 야당들과 손잡고 통합을 추진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손 대표의 종북 발언도 그런 의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손 대표 측은 전혀 근거 없는 비약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갈등으로 야권연대라는 큰 틀이 깨지지는 않겠지만 경고등이 들어온 건 사실이다. 향후 본격적인 통합 협상과정에서 손 대표 발언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 민주당 관계자는 “민노당이 야권연대를 깨진 않더라도 협상 과정에서 손 대표 말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활용할 것”이라며 “대표의 명백한 실수”라고 말했다.

◇손 대표에 대한 정체성 논란까지=종북 발언의 파장이 가장 크게 미친 대상은 다름 아닌 손 대표 자신이다. 손 대표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에 아주 민감하다. 이런 상황에서 일종의 ‘자살골’을 넣은 셈이다.

당 안팎에선 즉각 정체성 문제가 거론됐다.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개인 성명까지 내고 “손 대표는 역사공부부터 새로 하라. 그것이 어렵다면 정체성에 맞는 정당을 도로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신랄하게 공격했다. 친손학규계로 분류되는 김부겸 의원조차 “적절한 시기에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다. 야권통합을 앞두고 있는데 민노당 등에서 오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손 대표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없지는 않다. 이용섭 대변인은 “우리는 종북 진보와 확실히 다르다고 선을 그어준 것이다. 이런 논쟁은 손 대표에게 절대 손해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내 전반적인 분위기는 손 대표에게 여전히 ‘민주당 감수성’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