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휘황한 ‘신국의 땅’
입력 2011-07-11 17:36
국내 최고의 관광도시 경주. 곳곳에 세계문화유산이 산재하고, 처연한 폐사지부터 살아 있는 전통마을까지 볼거리가 수두룩하다. 도시 전체가 노천박물관이라고 일컬어지는 역사의 보고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사철 기온이 좋다 보니 스포츠 대회도 많아 마라톤과 더불어 어린이 축구대회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아쉬운 것이 밤의 문화다. 도심은 생활공간으로 분주하고, 불국사지구나 보문단지 등은 투숙객들을 상대로 한 접객업소만 즐비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짝퉁의 유흥산업은 매력이 없다. 그렇다고 시끌한 야외공연을 유치할 수도 없는 일이다. 천년고도의 고즈넉한 운치를 깨기 때문이다. 요컨대 격조 있는 프로그램이 없으니 중국 시안(西安)과 같은 경쟁도시에 밀린다.
이렇듯 국제관광지로서 약점을 가진 경주의 밤에 환한 등불이 켜졌다. 제대로 된 수준급 공연물이 상륙한 것이다. 경주 진출의 주역은 정동극장. 서울에서 16년간 연간 600회의 무대를 꾸미며 전통공연의 중심 역할을 해오던 정동극장이 경주에 7월 사업소를 내고 국가 브랜드 공연에 나섰다. 정부가 추진하는 ‘경주관광 재생 프로젝트’의 야심작이기도 하다.
공연 제목은 ‘신국(神國)의 땅, 신라’. 박혁거세와 알영을 중심으로 한 건국설화, 신라의 간판스타인 선덕여왕과 화랑 용춘의 사랑이야기, 해동의 빛으로 길이 남은 신라문화를 바탕으로 한 편의 장쾌한 서사극을 만들어냈다. 500석 규모의 경주문화엑스포 공연장에서 매주 화∼일요일 밤에 상설공연되니 경주로서는 새로운 밤의 콘텐츠를 가진 셈이다.
첫 무대인 만큼 다듬어야 할 과제는 많다. ‘미소 2’라는 브랜드보다 ‘신국의 땅’이라는 표제가 더 어필하지 않을까. 뮤지컬과 무용극, 가무악극 가운데 정체성이 궁금하다. 무대 이동이 단조롭고 객석을 훑는 레이저 조명도 거칠다. 극적 구조가 취약하니 마무리 장면이 느닷없이 다가선다. 강한 임팩트를 위해서는 스토리 라인을 단순화하는 것이 좋겠다. 창작극은 늘 다듬으면서 완성되니까.
그래도 출발이 이 정도면 좋다. 화려한 무대와 웅장한 음악은 신라문화의 힘을 보여주기에 족하다. 모란을 든 군무 장면이나 대규모 타악 장면은 가슴을 뛰게 한다. 전문가 그룹이 아닌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나 외국인들이 즐기기에 알맞다. 이런 노력이 성공을 거두어 경주를 찍고 제주까지 진출해 지방문화 활성화의 씨앗이 되길 기대한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