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군 입대의 기준

입력 2011-07-11 21:12


“병무청 신체검사와 입영검사 과정에서 인성검사 결함자는 입영시키지 않겠다.”(7일, 국방부) “앞으로 훈련기간 8주 가운데 4주차에 모든 입영자를 대상으로 병무청 인성검사 결과와 정신과 군의관의 진단 결과 등을 토대로 현역복무 적합 여부를 재판정하겠다.”(9일, 해병대)

지난 4일 인천 강화도 해병대 소초에서 일어난 김모(19) 상병의 총기 난사 사건 이후 군 당국이 내놓은 재발 방지 대책이다. 해병대사령부는 10일, 다음주 초 지휘책임을 물어 해당 연대장 민모 대령과 대대장 한모 중령의 보직도 해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정신과 의사들 사이에 실효성 논란과 함께 또 다른 부작용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정신과 이병철 교수는 “단순한 성격이상 및 부대 부적응 문제까지 현역복무 부적합 대상이 되는 정신질환으로 삼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대한정신과학회 홍보이사)는 “앞으로 ‘되지도 않는 이유’로 병사용 진단서 발급을 요구하는 입영 대상 젊은이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일선 지휘관들의 잘못된 군 의료 관행을 고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있다. 1980년대 초반 ○○특공여단 의무대장을 지낸 모 대학병원 J교수는 “왜냐하면 군 인사고과에서 환자 발생을 마치 안전사고가 생긴 듯 평가하기 때문”이라며 “군에서 ‘환자가 많은 부대는 문제가 많은 부대’라는 인식을 계속 유지하는 한 제2, 제3의 김 상병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상병은 소위 후임병이 선임병을 인정하지 않는 병영문화의 일종인 ‘기수열외’가 될까 걱정한 나머지 동료 병사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대부분의 장병들이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거나 ‘군대는 본래 그런 거야’ 하고 견디는 것을 김 상병의 경우 그러지 못했다.

문제는 이런 위험을 안고 있는 장병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군에서 관심사병으로 분류돼 특별 관리를 받고 있는 병사 비율이 약 5%에 이를 정도다. 유낙준 해병대사령관도 지난 7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해마다 훈련소에 입소하는 평균 600명 중 50명 정도가 관심사병으로 분류된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제2, 제3의 ‘김 상병’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군기사고 발생을 특정 병사 개인의 정신건강 문제로 몰지 않는 병영문화 조성이 필요하다. 정신과 전문의의 특별한 관심과 보호의 손길이 필요한 상태에서 도리어 ‘문제아’라는 낙인을 찍어 따돌릴 수밖에 없는 부대 환경 개선이 더 시급하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군대에선 구타가 금지되고, 선임의 후임에 대한 통제 방법이 원천봉쇄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선임병들이 오히려 정신과 진료를 받을 정도”라며 “문제 사병을 따돌리지 않고도 후임병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아 서둘러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김 상병과 같이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도 때로는 활동적이고 정열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긍정적인 행동을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관심사병의 역기능적 충동성을 줄이고 순기능적 충동성을 잘 살려주는 노력, 즉 자기 에너지를 건강한 방향으로 바꿔주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입영 자원이 부족할 때는 일시적으로 완화했다가 사고가 나면 다시 상향 조정하고, 국방부 장관이 누가 되는가 등에 따라 고무줄처럼 정신질환에 대한 입대 기준이 바뀌어선 안 된다. 차제에 무슨 기준을 어떻게 적용했을 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현재 우리 병사들의 정신건강은 어떤 상태인지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정확한 진단 및 치료 지침을 수립해야 한다.

지금은 위험을 알면서도 그대로 끌어안고 가는 행위야말로 우리 모두를 위험에 빠트리는 최악의 선택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할 때다.

이기수 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