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창우 (9) 유학 준비 위해 지방 병원외과장으로
입력 2011-07-11 17:53
“여보, 레지던트 기간 동안 아이 낳고 내 뒷바라지 해 주느라 고생 많았지. 이제 제천으로 내려가면 1년간은 지금보다 시간이 많아질 거야. 이번에 당신과 아이들에게 잃은 점수를 만회할 시간을 좀 줘.”
1996년 2월 충북 제천 제천서울병원 정형외과장으로 내려가게 된 것은 한양대 의대 교수님들의 명령 때문이었지만 경제적 이유도 있었다. 누구는 장인어른이 강남의 대형교회 목회자이고 부친이 의사인데 무슨 엄살을 부리느냐고 핀잔을 준다. 하지만 양가 어르신의 삶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장인이신 김선도 광림교회 원로목사님은 십의 일조가 아니라 십의 십조라도 드리는 분이었다. 아내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 생계를 위해 쓰여야 할 사례비가 교회건축과 선교현장, 신학생,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을 위해 사용되는 것을 수없이 봐 왔기 때문에 이미 ‘단련’된 상태였다.
의사이신 아버지도 5남매를 키우시며 지역 저소득층 환자가 오면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가며 진료를 봐 주시는 분이었다. 당연히 미국 유학을 가려 해도 자체적으로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다.
물론 양가 부모님께 큰 도움을 받은 것이 있다. 그것은 기도와 말씀으로 든든한 울타리가 돼 주신 것이다. 하나님 앞에 ‘큰 그릇’으로 쓰임 받은 양가 부모님은 물질보다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셨고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마다 늘 옳은 방향을 제시해 주셨다.
미국 유학비를 놓고 기도 중 당시 미국계 의료기기 회사에서 의대 교수들을 대상으로 1∼2년간 유학비를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대학 교수가 대상자이지 나처럼 박사과정을 마친 사람에게 주는 게 아니었다. 가능성은 없어보였지만, 하버드 의대 유학 지원 프로그램에 연수 계획서를 제출했다.
간절한 기도의 힘일까. 얼마 후 연락이 왔다. 회장님이 나를 뵙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회장님은 많은 돈을 교회 건축 헌금으로 내 놓을 정도로 신앙이 좋은 분이었다.
“이 선생은 개업하면 큰돈을 벌 수 있으면서 왜 유학을 떠나려는 것이죠? 그것도 의대 교수들만 갈 수 있는 의학 연수 코스를.”
나는 내가 왜 선교를 서원하게 됐고 인공관절 전문의가 되려 했는지 인생 스토리를 풀어냈다. “예, 물론 저는 교수를 할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미국으로 가려는 이유는 의료선교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의사들이 선교지로 떠나기를 주저하는 것은 장단기 선교를 마치고 돌아올 수 있는 병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의료선교의 큰 울타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장차 의료선교사들이 마음 놓고 사역한 뒤 돌아올 수 있는 베이스캠프와 같은 병원을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선진 의료기술을 습득하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회장님은 나를 한참 동안 쳐다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선생님은 교수가 아니지만 우리가 도와드려야 할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미국 의료연수에 2구좌를 지원해 드리죠.” 할렐루야! 1구좌는 2만5000달러의 큰 돈이었다.
그렇게 3년 미국 의료연수 중 2년차부터 장학금을 지원받기로 결정됐다. 우리 부부는 1년 생활비만 준비하면 되는 것이었다. 제천에서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무릎관절 수술 환자가 쉴 새 없이 몰려들었고 레지던트 생활 못지않게 바쁜 생활이 지속됐다. 우리 부부는 그곳에서 악착같이 모아 2000만원을 마련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