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센누마에 솟은 십자가
입력 2011-07-11 15:31
[미션라이프] 십자가가 보였다. 모든 것이 쓰러져버린 게센누마. 절망만이 현실인 그곳에 두 개의 십자가가 서 있었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빛이었다.
지난 3월 11일 오후 2시46분. 거대한 쓰나미가 일본 동북부 산리쿠 해안의 항구도시 게센누마를 덮쳤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15년 역사를 지닌 게센누마제일성서침례교회의 구조물이 물살에 휩쓸려 내려갔다.
기도실에 있던 히로시 미네기시(63) 목사는 지진 직후 거대한 쓰나미를 예상했다. 본능이었다. 부인, 아들과 함께 자동차에 올라타 무조건 높은 곳으로 갔다. 목숨을 건졌다. 지진과 쓰나미의 피해는 대단했다. 게센누마 초토화. 선로는 끊어졌다. 건물은 모조리 무너졌다. 교회 바로 앞집도 배처럼 물결에 휩쓸려 50여m 이동했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스태프들과 함께 현장을 방문한 지난 7일, 지진 발생 후 4개월 가까이 됐지만 피해지역은 여전히 폭격 맞은 듯 했다.
▼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정정섭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센다이요한기독교회 한승희 목사(오른쪽 두 번째) 등이 미네기시 목사에게 축복송을 불러주고 있다.
미네기시 목사는 피난 3시간 후에 교회로 걸어 들어가려 했다. 아비규환이었다. 사람들이 중간에서 막아섰다. “가지 마세요. 전멸상태 입니다.” 온통 진흙과 쓰레기 천지였다. 물이 빠진 이후에 교회로 간 미네기시 목사는 산더미 같은 쓰레기 밖에 남지 않은 교회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교회가 사라졌다. 아, 교회가 완전히 사라졌다….’
미네기시 목사는 3년 전 ‘열도 복음화’의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각오로 교회당을 새로 지었다. 그와 25명의 성도들이 은행에서 상당한 액수의 빚을 내 성전을 건축했다. 비록 일본의 기독교인이 전 인구의 0.5%에 불과하지만 전 일본 복음화라는 소망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무너진 교회를 보니 기가 막혔다. 눈물이 났다. 탄식하는 그에게 불현듯 말씀이 들어왔다. 욥기 1장 21절. “모태에서 빈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
지진으로 세상이 요동치고, 모든 것이 사라진다해도 오직 한 가지, 그리스도만을 붙잡고 그 이름을 잃지 않으면 산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떠한 고통도, 거대한 쓰나미도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자신과 성도들을 끊을 수 없음을 거듭 확인했다.
이번 쓰나미로 성도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미네기시 목사와 성도들은 다시 일어섰다.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힘의 원천이었다. 일본기아대책기구 스태프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교회당을 덮은 쓰레기를 말끔히 치웠다. 그리고 교회 토대 위에 나무토막으로 십자가를 세웠다. 그러던 중 마을 주민이 쓰레기 더미에서 하얀 교회 십자가를 발견, 미네기시 목사에게 가져다주었다. 기적이었다. 그래서 지금 교회 터 위에는 십자가가 두개 세워져 있다.
현재 교회는 한 인쇄소 공장을 빌려 예배를 드리고 있다. 지난 5월1일에는 게센누마를 방문한 국제구호단체 ‘사마리아인의 지갑’ 대원들이 두개의 십자가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그 곳에서 예배를 드리자고 했다. 미네기시 목사는 그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마침 아사히신문 기자가 그 모습을 보고 1면에 십자가 사진을 게재했다. 지진이 아니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원활동을 위해 게센누마를 방문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정정섭 회장과 스태프들, 요한센다이기독교회의 한승희 목사 등도 미네기시 목사와 교회를 위해 기도했다. ‘살아계신 주’를 함께 불렀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미네기시 목사가 흐느꼈다. 그리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십자가는 희망과 치유를 상징합니다. 십자가 아래서 일본이 다시 일어서는 것, 오직 그 길 만이 일본이 사는 길입니다. 부디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 지진 이전의 게센누마제일성서침례교회의 모습.
정 회장이 미네기시 목사를 위해서 기도했다. “여기 당신의 선한 목자가 있습니다. 이 목자의 눈물과 기도, 간절한 소망을 외면하지 마시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그리고 이번 지진을 통해서 새로운 ‘선교 일본’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2000년부터 센다이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승희 목사는 “하나님은 일본의 영혼들을 결코 버려두지 않으시는 좋으신 분”이라면서 “지진을 통해서 일본인들이 새롭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 목사는 “지금 일본에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필요하다”면서 “구름같은 한국의 청년과 성도들이 일본에 건너와 이들에게 ‘떡과 복음’을 전해 주기 소망한다”고 피력했다.
미네기시 목사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토지를 구입, 하나님의 교회를 다시 세우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건축이 목적이 아니라 지진과 쓰나미에도 ‘열도 복음화’의 열망은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 미네기시 목사가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정정섭 회장을 껴안고 있다.
이번 지진사태 이후 무수한 사람들이 일본을 떠났다. 심지어 선교사들도 잠시 피신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남은 사람들, 남은 선교사들이 있었다!! 일본 지진지대를 살피는 여정가운데서 ‘남은 자’들을 만났다. 대지진도, 쓰나미도, 후쿠시마의 방사능도 그들을 떠나게 하지 못했다. 남은 한인 선교사님들을 만나면서 그들이야말로 ‘래디컬 크리스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옆 나라 일본, 5시간이면 서울에서 센다이까지 도쿄를 경유해 갈 수 있는 그곳, 거기에 강도만난 이웃이 있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일본 선교’를 한번이라도 이야기 했다면 지금이야말로 일본 선교의 기회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라. 지금 일본인들의 마음이 열려 있다. 평소 도움 주기도 힘든 그 일본인들이 간절히 한국인들의 손을 붙잡으려 하고 있다. 이 기회의 때에 누군가는 그 곳에 가야 하지 않는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 속에서도 희망의 줄을 놓지 않는 이들 일본인들, 그리고 그들에게 한발자욱이라도 더 다가가기 원하는 선한 크리스천들...
일본에서 한국의 교회를 생각해 본다. 아, 우리는 너무나 가볍고 사소한, 편한 주제를 갖고 ‘하나님의 뜻’이니, 아니니 고민하며 기도하지 않은가. 물론 그런 일상의 사소함도 중요하고 때론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그런 사소함을 뛰어넘어 ‘래디컬’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장소들이 있다. 급박한 때가 있다.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
▼ 미네기시 목사와 인터뷰 하는 이태형 선임기자. 가운데가 한승희 목사.
미네기시 목사를 만난 것은 개인적으로도 행운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이 글을 쓰는 사이 그의 깨끗한 얼굴, 그리고 그 간절함이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이런 상상을 해 본다. ‘강도만난 이웃’과 같은 일본의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사랑과 소망의 교회’를 게센누마의 무너진 교회 자리에 지어 준다면…. 하나님이 무척 흐뭇해하실 일 아닌가.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마음에 소원(남은자를 만날 소원, 일본에 교회를 세울 소원, 그 땅을 가기 원하는 소원)이 있는 분들은 메일(justin1057@hotmail.com)이나 전화(010-3731-1961)로 연락을 주시기 바란다.
게센누마=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