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간 여당 장기집권 말레이시아 ‘선거법 개혁’ 시위 충돌

입력 2011-07-10 18:56

말레이시아 야권과 시민단체가 주최한 ‘선거법 개혁’ 집회가 지난 주말 수도 쿠알라룸푸르 시내 곳곳에서 열려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이 빚어지고 1600여명이 연행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집트 리비아 등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발발한 시위 사태가 같은 이슬람권인 동남아 지역으로 확산될지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야권과 62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단체 ‘베르시(공정) 2.0’은 9일 “여당연합인 국민전선(BN)이 불공정 선거제도를 이용해 50여년간 장기집권하고 있다”면서 매표 행위 방지, 선거운동 기간 연장, 여당과 야당에 같은 언론보도 시간 할당, 투표자 식별용 지워지지 않는 잉크 사용 등을 요구했다. 주최 측은 시위 참가자가 5만명이라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1만명이라고 반박했다. AP통신 등 외신은 2만∼3만명으로 추산했다.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고 곤봉을 휘두르며 시위 강경 진압에 나섰다. 야당 지도자인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가 경찰의 최루탄 공격 때 도로에 넘어지면서 부상당했고, 말레이시아 변호사협회 의장을 지낸 암비가 스리니바산 ‘베르시 2.0’ 의장과 시민운동가 마리아 친 압둘라 등이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은 10일 “시위 참가자 1667명을 체포했으나 시위가 진압된 이후 전원 석방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베르시 2.0은 성명을 통해 경찰의 강경 진압을 비난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많은 말레이시아 국민이 정부의 방해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시위에 참가, 국가와 정의에 대한 사랑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베르시 2.0은 당초 운동장 집회만 허용할 수 있다는 정부 측 제안을 받아들여 메르데카 경기장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쿠알라룸푸르 시내로 향하는 주요 도로와 철도를 봉쇄하고 시위 예정 장소인 메르데카 경기장 주변 등에 경찰을 대거 배치하는 등 원천봉쇄에 나서자 시내 집회를 강행했다.

나지브 라작 총리는 “야권의 집회는 사회 불안을 야기하고 반정부 정서를 조장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며 시위대를 비판했다.

하지만 정정이 안정된 편인 말레이시아에서 수만명이 운집하고 1000명이 훨씬 넘는 참가자가 연행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어서 여당엔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는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다수당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권력을 독점해 왔다. 하지만 3년 전 조기총선에서 야당이 사상 처음으로 전체 의석의 30%를 차지하며 약진했다. 야당은 공정한 선거가 치러지면 정권교체도 이룰 수 있다며 공언하고 있다. 1년 안에 조기총선이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여당은 지난달 야당 인사들을 보안법 혐의로 구속하는 등 야권을 탄압, 당분간 정정 불안이 이어질 전망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