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제 의무화 10년, 거수기 노릇 여전… “반대” 1%도 안돼

입력 2011-07-10 21:33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100위 안에 드는 국내 기업들이 지난 한 해 각사 이사회에서 처리한 안건은 총 2685건이다. 이 중 사외이사들의 반대로 부결된 안건은 4건(0.15%)에 불과했다.

사외이사제도가 법제화된 지 올해로 10년을 맞았지만 지배주주를 비롯한 경영진을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내 상장회사 사외이사 가운데 이들을 임명하는 회사 측과 직·간접적인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사외이사 비중도 전년에 비해 지난해 3.25% 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 ‘거수기’ 전락에 경영진 견제 실종=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100개 상장사는 총 2685건의 안건을 처리했다. 하지만 사외이사들의 반대로 부결된 안건은 고작 4건. 이사회 안건이 거의 반대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셈이다. 사외이사에 의해 그나마 안건이 보류된 경우도 7건(0.26%)에 그쳤고, 수정 가결과 조건부 가결은 각각 12건, 3건이었다. 결과적으로 사외이사들이 전체 안건 중 26건(0.97%)에만 영향을 준 것이다.

이사회 안건에 대해 찬성이 아닌 반대, 수정, 기권 등의 다른 의견을 한 번이라도 제시한 사외이사 역시 전체 466명 중 9.8%인 46명에 불과했다. 사외이사의 90%가 지난해 한 번도 반대 표시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시총 1위인 삼성전자는 지난해 9차례 이사회를 열어 31개의 안건을 처리했지만 사외이사 4명 중 반대의견을 제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시총 2위인 현대자동차 역시 작년에 이사회를 13차례 열어 28건을 심의했지만, 단 한 번의 반대 없이 안건이 처리됐다. 사외이사들은 최대주주 주식 거래 승인, 계열사에 대한 유상증자 등 소액주주의 이해와 충돌할 수도 있는 안건을 100%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LG화학 사외이사들도 임원에게 특별상여금을 지급하는 등 24개 안건을 반대의견 없이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사외이사들이 안건에 반대나 보류 의견을 제시한 기업은 100개 기업 중 신한지주, KB금융, 한국전력, KT&G, 금호석유, 강원랜드, 외환은행 등 7개사에 그쳤다.

◇이해관계 있는 사외이사 버젓이 선임=사외이사제도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지배주주를 비롯한 이사의 직무 집행을 감시·감독함으로써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투자자 이익을 보호하려고 도입됐다. 2001년 개정 증권거래법을 통해 모든 상장사가 일정 인원의 사외이사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했다.

그러나 사외이사가 이처럼 ‘거수기’로 전락한 것은 사외이사가 회사 측으로부터 독립성을 부여받지 못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배주주나 경영진이 선임하는 사외이사는 이사회 안건에 ‘함부로’ 반대표를 던지기 어렵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지난 2월 발표한 ‘사외이사의 실질적 독립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278개 상장회사의 사외이사 854명 가운데 회사 측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외이사 비중이 32.20%(275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9년 28.95%(231명)보다 3.25% 포인트나 늘어난 것이다. 회사와의 ‘특별한 관계’뿐 아니라 사측에 반대할 만큼 전문적 식견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