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發 물갈이 파도… 중진들 “텃밭 포기” 잇따를 듯

입력 2011-07-11 00:24


정치권, 내년 총선 앞두고 심상찮은 기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영·호남에서 물갈이 파도가 심상치 않게 일고 있다. 텃밭에 지역구를 둔 중진급 인사들이 과감하게 기득권을 버리고 사지(死地)에 출전하겠다며 연쇄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주된 진앙지는 민주당이다.

호남 출신 3선인 민주당 김효석 의원(전남 담양·곡성·구례)은 1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9대 총선 때 수도권에 출마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그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수도권 승리가 갖는 의미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며 “제 지역구에 안주한 채 수도권에서 전개될 치열한 싸움을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만은 없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제가 앞장서서 한나라당의 친서민 정책의 허상을 밝히고, 새로운 인재 영입을 위한 물꼬를 뜨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도권 어느 곳에 출마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한 상태다. 일단 당내에서는 김 의원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손학규 대표는 전날 밤 김 의원의 결심을 전해 듣고 “그런 결심을 해줘서, 물꼬를 터주고 새로운 변화에 나서줘서 고맙다”고 치하했다.

이용섭 대변인은 공식 논평까지 내고 환영했다. 특히 정장선 사무총장은 “김 의원이 헌신적 역할을 통해 새로운 인재들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터줬다”며 “앞으로도 이런 흐름이 당내에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호남 중진들에 대한 우회적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민주당에서 ‘호남 물갈이론’ 또는 ‘수도권·영남 차출론’과 관련, 주목할 만한 흐름은 분명히 존재한다. 앞서 전주 완산갑에서 4선을 한 장영달 전 의원은 지난 6일 경남 함안·합천·의령 선거구 출마를 선언했다.

정세균 최고위원(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의 경우 당 대표 시절이던 2009년 4월 호남 불출마를 일찌감치 공언한 뒤 현재 ‘정치 1번지’의 상징성이 있는 서울 종로 출마를 적극 검토 중이다. 대표적 486 인사인 김영춘 최고위원은 부산 진갑 출마를 선언한 상황이며, 차기 당권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김부겸 의원(경기 군포)은 대구 출마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종전 불모지나 적지로 치부하던 지역에 출마해도 ‘해볼만하다’는 야권의 자신감이 깔려 있다. 여권에 대한 민심이반이 그 근거다.

그러나 뽑아준 유권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지역구를 바꾸는 방식은 선거제도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주로 호남권 의원들의 반발이다. 공천의 유·불리에 따른 개인적 계산을 대의(大義)로 포장하고 있다는 평가절하도 없지 않다.

박주선 최고위원(광주 동)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국회를 새로운 인물들로 새롭게 구성하는 게 물갈이지 똑같은 인물들이 자리(지역구)만 옮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김효석 의원의 경우 아직도 임기가 8개월 남은 상황에서 기존 지역구 활동을 포기하고 새로운 지역구를 물색한다는 건 주민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에서도 텃밭인 영남권에서 현역 의원 다수의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미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원희룡 최고위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이 내년 총선 때 새로운 인물들을 영입해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며 “올 가을부터 현역들의 불출마 선언이 도미노처럼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 지역 한 초선 의원도 “다선 의원에 대한 피로감 때문인지 지역에서 물갈이를 원하는 여론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자발적인 줄사퇴’를 요구했다.

김호경 노용택 기자 hk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