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주차시설 태부족 짜증난 관람객들 “다시는 안 간다”
입력 2011-07-10 17:49
얼마 전 아내와 자녀 2명을 승용차에 태우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 서오릉(경기도 고양)을 찾은 김형욱(45·서울 당산동)씨는 주차 때문에 애를 먹었다. 서오릉 주차장에 도착했으나 빈 공간이 없어 주변을 몇 번이고 돌았다. 자리가 나지 않아 할 수 없이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조건으로 겨우 차를 대고선 왕릉을 관람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2년을 맞은 조선왕릉이 턱없이 부족한 주차시설로 관람객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조선왕릉은 2009년 6월 27일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문화공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가족 단위 체험학습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서울 외곽에 위치해 승용차 이용이 불가피하지만 주차 공간은 몇 대 되지 않는다.
14개 왕릉 관리소 중 주말이면 하루 3000여명이 몰려드는 등 연간 입장객(40만명 안팎)이 가장 많은 서오릉은 주차 대수가 46대에 불과하다. 게다가 무료여서 이곳 주민이나 상인들이 주차장을 점령하는 탓에 늘 만차 상태다. 정작 관람객들은 차를 대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지하철 3호선 삼송역에서 내려 41번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이 있는 동구릉(경기도 구리)도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관람객 대부분이 승용차를 이용하는 실정이다. 주말의 경우 하루 최대 2700명, 연간 19만여명의 관람객이 찾지만 주차장에는 고작 111대를 댈 수 있다. 이곳 주차요금은 소형 2000원으로 주말이면 빈 공간을 찾기 어렵다.
서울 강남 도심에 위치한 선릉의 경우 연간 40만명 안팎, 하루 최다 4000명까지 몰려들지만 주차 공간은 37대뿐이다. 이곳 주차 요금은 10분당 400원으로 주변 공용주차장보다 싸기 때문에 관람객보다 주변 사람들로 연일 만차 상태다. 선릉은 지하철 2호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쉬운 편이지만 부득이하게 승용차를 이용해야 하는 관람객으로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세계문화유산 등재에도 불구하고 일반 관람객이 늘어나지 않고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주차 공간이 13대뿐인 정릉의 경우 등재 전 1년간 관람객이 23만9000여명이었으나 등재 후 1년간 20만7000여명, 이후 1년간은 19만여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서오릉도 44만2000여명에서 최근 1년간 38만9000명으로 감소했다. 다만 외국인 관람객은 동구릉의 경우 등재 전 432명에서 등재 후 1년간 2753명, 2년째 7770명으로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동구릉을 찾은 민모(44)씨는 “주차 공간을 찾지 못해 쩔쩔매다 주위 도로변에 불법 주차한 채 관람했는데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예산 확보도 그렇고 세계문화유산 주변에 주차장을 개설하는 문제가 쉽지는 않다”며 “관람객 편의를 위해 효율적인 주차 관리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