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 가득 ‘블루’의 향연… 여름을 식히다
입력 2011-07-10 17:28
여름은 청색의 계절이다. 자연이 온통 푸르다. 청색은 식물의 성장과 생명의 탄생, 동시에 풍성함을 의미한다. 또한 새벽하늘의 빛깔을 나타낸다고 하여 예로부터 ‘청천(靑天)’이라 불리기도 했다. 고구려 신라 백제 등의 복식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인 색채가 청색이다. 푸르름에 대한 한국인의 색채의식과 정서를 미술작품으로 들여다보는 전시가 마련됐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8월 7일까지 열리는 ‘靑-Beyond the Blue’ 전으로 한여름 청량감을 선사할 작가 20여명의 80여점을 선보인다. 1부 ‘전통과 자연’에는 남관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김창열 방혜자 박서보 정상화 이우환 김종학 유희영 이강소 전광영 강익중 등의 작품이 출품되고, 2부 ‘생성과 발원’에는 노은님 강형구 유봉상 김동유 홍경택 권기수 민성식 등의 대표작이 걸린다.
시인들이 언어를 통해 보이지 않는 감성들을 담아낸다면 화가들은 색채를 통해 자신의 시각과 감성을 표현한다. “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고/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 바닥은/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라고 시작되는 김소월의 시 ‘풀따기’는 설악산의 사계를 화폭에 옮기는 김종학의 ‘달밤의 들꽃’이나 한국 모더니즘의 선구자 유영국의 ‘Work(작업)’와 맥이 통한다.
장욱진의 서정적인 그림 ‘풍경’이나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 ‘회귀’는 신석정의 시 ‘들길에서’와 맞닿아 있다.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나고 살 듯/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중략)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하략)”
권기수 작가 특유의 동구리가 푸른 하늘을 나는 그림 ‘blue sky breakthrough’는 윤동주의 시 ‘창공’을 떠올리게 한다. “그 여름날/열정의 포플러는/오려는 창공의 푸른 젖가슴을/어루만지려/팔을 펼쳐 흔들거렸다./끓는 태양 그늘 좁다란 지점에서//천막 같은 하늘 밑에서/떠들던 소나기/(중략)//푸드른 어린 마음이 이상에 타고,/그의 동경의 날 가을에/조락의 눈물을 비웃다.”
김환기의 청색 추상화와 남관의 문자추상 ‘내 마음에 비친 일그러진 상들’, 박서보의 ‘묘법’, 이강소의 ‘생성’, 이우환의 ‘조응’도 푸른 계절에 시를 고요하게 읊듯 감상할 만한 작품들이다. 강형구의 ‘자화상’이나 김동유의 ‘마릴린 먼로’는 인물을 통해 청아한 느낌을 선사하고, 고은님의 ‘깊은 바다’와 강익중의 ‘행복한 달항아리’는 일상에서 발견하는 푸른빛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청색은 자연과 동화되어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한국인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색이라 할 수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산이 많은 지리적 특성도 청색을 좋아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독특한 색채의식 가운데 자리한 청색의 은유적인 표상을 언어적, 시각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전시다(02-2287-350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